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선물4

선물 ‘선물’ 이야기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일요일인데도 아내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더덕구이와 갈치자반이 상에 올랐다. 잠이 덜 깬 딸애가 밥상머리에 앉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고, 곧 서울에서 아들 녀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른바 ‘귀가 빠진 날’인 것이다. 선물은 생략이다. 아내가 선물 사러 나가자고 여러 번 권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험 준비 중인 딸애는 따로 선물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듯했고, 아들애는 전화로 제 어미에게 대신 선물을 준비하라 이른 모양인데, 내가 선물 얘기를 잘라버린 것이다. 나나 아내는 여전히 선물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지난 5월(어버이날)에는 딸애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군에 있던 아들 녀석이 ‘군사우편’을 보내왔었다. 오후에는 외출에서 돌아온 딸애가 선물 상자 하나.. 2021. 10. 21.
걸어온 길, 걸어갈 길 학교를 떠나며 ② 후배, 제자들과 함께한 퇴임 모임 후배 교사들이 마련해 준 25일의 퇴임 모임에 나는 10분쯤 지각했다. 모임 장소인 식당 2층에 올라 실내로 들어서는데 방안 가득 미리 와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네 오는 바람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그런 식의 환대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뚜렷하게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창가에 작은 펼침막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것은 한참 뒤다. ‘당당히 걸어오신 길,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라는 문구 아래 내 이름이 씌어 있었다. 잠깐 앉았다가 나는 자리를 돌면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후배 교사들이 스물 서넛, 인근에 사는 제자들이 여덟 명이 와 주었다. 따로.. 2019. 3. 24.
너희들도 때론 내게 ‘스승’이어라 스승의 날, 아이들로부터 축하케이크를 두 번 받다 아이들에게 오래된 교단의 기억들을 얘기한 적이 있다. 20년 전 ‘열등반 담임의 추억’ 말이다. 그러면서 그 녀석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자신들의 얘기도 글로 써 달라고 주문했다. 이 글은 아이들의 주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쑥스러움을 무릅쓰는 까닭도 순전히 거기 있으니 독자들께서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면 좋겠다. 교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아이들은 교사들을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젊은 총각 교사와 처녀 선생님들에게 아이들 마음이 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교사들은 의식적으로 아이들을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으려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교육적 필요 때문이면서 한편으로 인간적 자기 통.. 2019. 3. 23.
가지치기, 혹은 거름과 물 주기 졸업식, 아이들을 보내며 학년 말이다. 한 해 농사를 다 지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농사는 사람 농산데, 요즘 이 농사꾼은 고단하다. 이 작물은 제멋대로 자라는 성질이 있어서 농사꾼은 제풀에 지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기르는 이 농사꾼 중에 으뜸은(말하자면 ‘꽃’은) ‘담임’이다. ‘생살여탈권’에 준하는 권한을 무제한 행사했던 옛날과는 다르지만,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내밀한 교감 같은 것도 가능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3년을 내리 쉬고 지난해 3월, 스스로 원해서 3학년 담임을 맡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비담임으로 지내면 ‘몸의 평화’와 ‘정신의 이완’을 맞바꾸어야 한다. 조·종례에서 해방되고 반쯤은 ‘강시처럼’ 살아도 된다. 종이 울리면 무조건 반사로 교실.. 2019.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