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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석주 이상룡5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둘러보기 ‘독립운동의 본향’, 안동에 ‘독립운동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안동시의 시정 구호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것처럼 일제하 독립투쟁과 관련해 안동은 자신을 ‘독립운동의 성지’, ‘독립운동의 본향(本鄕)’이라고 매긴다. ‘성지’나 ‘본향’이란 표현은 그것을 떠받치는 만만찮은 역사와 인물을 갖지 않고는 쉽사리 하기 어려운 자부고 긍지다. 안동은 항일 의병의 효시랄 수 있는 갑오의병(1894)의 발상지요, 1905년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10명을 낳은 고장이다. (전국 66 명) 안동은 갑오 이후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 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51년 동안 쉼 없는 독립투쟁을 전개하여 단일 시군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 유공 포상자(310여 명, 포상받지 못한 이를 포함.. 2021. 8. 11.
“공맹은 나라 되찾은 뒤 읽어도 늦지 않다” [항일의 땅과 사람, 안동 ②] 임청각(臨淸閣)과 석주 이상룡 일가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 길 이름을 붙이는 전통은 이 땅에서는 그리 오래지 않다. 수도 서울 거리에 세종 임금, 퇴계 이황, 이충무공, 을지문덕 등의 이름이 붙이게 된 게 그 시초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지방에 이런 형식의 이름 붙이기가 파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방자치제 시행과 함께 지역 인물에 대한 조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이면에는 단순히 지역 인물을 기린다는 의미보다 역사적 인물과 그 흔적을 꾸밈으로써 관광수입을 늘리려는 지자체의 이해가 더 커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멀쩡하게 살아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웃지 못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안동에 ‘퇴계로’가 있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20. 3. 2.
군자정은 ‘그의 삶’과 함께 기억된다 [안동의 정자 기행 ②]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 군자정 군자정(君子亭)은 임청각(臨淸閣)의 정침(正寢, 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일을 보는 곳,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이다. 임청각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규모가 큰 살림집이다. 군자정을 세운 이는 석주의 17대조인 이명(李洺)이다. 그러나 안동에서 임청각은 석주의 생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에서 석주의 무게가 그만큼 큰 탓이다. 이 고택에서 석주를 비롯해 무려 아홉 분의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것이다. [관련 기사 : “공맹은 나라 되찾은 뒤 읽어도 늦지 않다”] 임청각은 안동시 법흥동에 있다. 원래는 모두 99칸 집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집 앞으로 중앙선 철길이 나면서 5.. 2019. 9. 28.
임청각 - 석주 일가의 사위·며느리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석주 이상룡 일가의 사위와 며느리 오늘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안동의 임청각(臨淸閣)과 석주(石州) 이상룡 선생 일가를 언급하면서 임청각에 사람들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임청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로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다. 아흔아홉 칸 대저택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모습 그대로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 2019. 3. 28.
77년 만의 귀환 - 석주(石洲) 이상룡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분들이니 이들의 국적 회복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 등 독립운동가 예순두 분. 임시정부 수립(1919) 90년 만이다. 이번에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되는 독립지사는 이상룡, 이봉희, 김대락 선생 등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는데, 이봉희1868~1937)는 선생의 아우이고,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은 선생의 처남이다. 석주가 류인식·김동삼 등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1907)를 세웠을 때, 백하는 문중 원로들과는 달리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경.. 2019.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