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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서대문형무소3

[오늘] 1908년 오늘-경성감옥에서 이강년, 허위 선생 순국하다 1908년 10월 13일 운강 이강년, 21일 왕산 허위 순국 1908년 10월 13일과 21일, 8일 간격으로 두 분의 독립운동가가 경성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의병부대 십삼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의 호서(湖西)창의대장 운강(雲崗) 이강년과 진동(鎭東:경기·황해)창의대장 왕산(旺山) 허위 선생이 그들이다. 경성감옥에서 순국한 두 독립운동가, 누가 먼저인가 경성감옥은 1906년 통감부 경무 고문 마루야마 시게토시(丸山重俊)가 한국 내 감옥의 수용 능력 부족을 지적하면서 신축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1907년 8월, 500여 명의 수용인원 규모로 건립되었으나 이듬해 10월에 정식으로 열었다. 1912년에 마포에 새 감옥이 세워져 경성감옥 이름을 가져가자, 서대문감.. 2023. 10. 13.
[순국(殉國)] 유관순 열사, 열여덟에 지다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벌여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유관순(柳寬順, 1902~1920)이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의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었다. 향년 18세. 1919년 4월 1일, 고향인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체포된 지 546일 만이었다. 1919년 5월 9일, 유관순은 1심인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 형을,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는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재판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유관순은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상고하지 않았다. 복심법원서 징역 3년 선고, 상고하지 않다 .. 2023. 9. 28.
[오늘] 1910년과 1941년, 독립운동가 오성술과 이규선의 순국 [역사 공부 ‘오늘’] 1910년과 1941년 9월 15일, 독립운동가 오성술, 이규선 순국 1910년과 1941년 9월 15일에 두 분의 독립운동가가 순국하였다. 한 분은 처형으로, 또 한 분은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물론 건국훈장으로 기리긴 하지만, 세상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순국한 지 108년과 77년이 넘어서만은 아니다. 2018년 8월 15일 현재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은 이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24명, 애국장 4,306명, 애족장 5,664명 등 10,917명이고, 건국포장 1,253명, 대통령 표창 2,887명 등 모두 15,057명이다.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해방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천5백만이니 0.0006%밖에 되지 않는다... 2023.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