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외경1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배추벌레와 교감하는 시인, 그러나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2020. 7.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