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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생명력2

시월의 들녘에서 읽는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하종오의 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어제는 아내, 딸애와 함께 장모님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노인네가 힘들여 심은 것을 우리는 잠깐의 노동으로 수확해 겨우내 그걸로 궁금한 입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 다르긴 하지만, 이럴 때 우리는 그냥 노인의 거룩한 노동과 그 결과를 노략질하는 자일 뿐이다. ‘황금들판’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르지만 10월 초순의 들녘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내 참외를 따냈던 대형 비닐하우스에 막혔다가 이어지는 들판 저편으로 짙푸른 하늘이 성큼 높았다. 드러난 살갗에 감기는 햇볕이 따뜻했고 가끔 이는 바람이 고개 숙인 벼들을 흔들고는 들판 저쪽으로 스러지곤 했다. 사진기를 들고 나는 잠깐 논두렁에 서 있었다. 나락의 낟알은 아직 실해 보이지 .. 2023. 10. 30.
[2010 텃밭일기 ④] 과욕이 남긴 것 섣부른 비료 주기, 고추 모를 죽이다 텃밭 농사가 주는 기쁨은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쌓여간다. 밭머리에서 우썩우썩 자라고 있는 상추와 쑥갓을 뜯어와 밥상에 올리고, 날마다 빛깔을 바꾸며 크고 있는 작물을 바라보는 기쁨이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는 달리 비닐을 덮기 전에 미리 퇴비를 얼마간 뿌렸건만, 밭 주인은 초조했나 보다. 우리는 시내 종묘사에서 소형 포대에 든 비료를 사 왔다. 장모님은 물비료를 조금 주고 말라고 했건만 우리는 그걸 귀담아듣지 않았다. 금비를 주려면 뿌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고랑 쪽에다 소량을 묻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필요한 건 ‘욕심’이 아니라 ‘시간’이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아내가 낮에 비료를 뿌렸다고 했다. 일손을 덜었다 싶어서 나는 흡족해했다. 그런데 .. 2020.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