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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사제4

고별-나의 ‘만학도’들에게 방송통신고 졸업생 여러분께 어떤 형식으로든 나의 만학도, 방송고 졸업반인 당신들에게 마음으로 드리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날 연휴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마땅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식은 14일이고 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12일입니다.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강행군을 하면서 여독이 만만찮았고, 거기다 가족 모두가 독감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오한과 발열로 하룻밤을 꼬박 밝히면서 저는 문득 이게 내가 31년을 머문 학교를 떠나면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학도들에게 건네는 고별인사 여행의 첫 3일은 좀 무더웠고 마지막 날은 추웠습니다. 공항에서 몸을 잔뜩 오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은 더해졌습니다. 귀가해 하룻밤을 .. 2022. 2. 19.
독립운동가들의 최후, 글로만 봐도 눈물이 난다 [서평] 김태빈의 항일답사 프로젝트 108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이듬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내준 하얀 수의를 ‘살아서’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안 의사의 거부로 변호에 실패한 일본인 변호사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는 말년에 그를 회고하는 글 를 썼다. 그 글은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로 시작된다. 연암 박지원의 의 여정을 따라가는 (레드우드, 2016)에 이어 김태빈이 펴낸 ‘항일답사 프로젝트’의 제목은 다. 이 명명은 아마 의연하게 죽어간 안 의사에 대한 국적을 넘는 ‘외경과 공감’의 표현일 터이다.(.. 2019. 11. 10.
교단 31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학교를 떠나며 ② 교단 31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2015학년도 종업식 때 퇴임 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학교 쪽의 제의를 저는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아이들과는 수업을 마치며, 교직원들에겐 송별회 때 작별인사를 하면 되리라고 여겼으니까요. 정년도 아니면서 공연히 아이들과 동료들 앞에 수선(?)을 피울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화요일에는 3학년, 수요일에는 2학년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2월 28일 자로 학교를 떠나게 되어 작별인사를 해야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짧은 탄성을 지르며 자세를 바로 하고 잠깐 긴장하는 듯했습니다. “고맙다. 지난 1년간 공부하면서 너희들은 나를 신뢰해 주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지키며 예의를 잃지 않았다. 나는 여러분과 교.. 2019. 3. 25.
그 아이들과의 10년, 1998년에서 2008년까지 약속대로 10년 만에 다시 만난 제자들 10년이란 시간 속에 담긴 변화와 그 의미는 어떤 것일까. 꼭 10년 전(1998년)에 나는 한 시골 고등학교의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인연이 닿아서였겠지만, 1학년 때에 이어 두 번째로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났다. 이미 서로를 알 만큼은 아는 사이여서 우리는 아주 편안하게 한 해를 함께했다. 이듬해 2월 아이들이 졸업할 때, 10년 후쯤에 꼭 한번 만나자며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이태쯤은 아이들과 내왕을 했다. 5월 스승의 날이 되면 아이들은 추렴하여 나를 안동의 삼겹살집으로 초청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사내아이들이 입영을 시작하면서 연락이 뜸해지더니 4, 5년 전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어졌다. 고1, 고3 두 차례나 담임으로 만난 시골 아이들 이 아이들의.. 2019.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