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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빈녀음2

‘능지처참 반역자’ 아닌 시대 앞선 혁명가였던 허균 [2박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②] 허난설헌 생가터와 교산 시비를 찾아서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강릉 여행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허난설헌과 허균을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아이들에게 ‘홍길동전’과 허균(1569~1618)을, 난설헌(1563∼1589)과 ‘규원가(閨怨歌)’를 가르쳐 온 문학 교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들 남매의 파란 많은 삶에 끌려왔기 때문이었다. 남매의 시대, 파란의 삶 블로그에 이들 이야기를 쓴 것은 거의 10년 전이었다. 나는 고액 종이돈에 실릴 인물 선정과 관련하여 신사임당(1504∼1551)과 비겨지는 여성으로서 난설헌을 바라보았고 의 서평을 썼다. 허균과 난설헌 유적지로 향하는데 아내가 그들이 .. 2019. 10. 30.
다시 난설헌을 생각한다 ‘현모양처’가 아니라 당대의 시대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위대한 문인 허난설헌 신영복 선생의 ‘난설헌 생각’ 고액 종이돈에 실릴 인물 선정과 관련된 논란이 어지러웠다. 신사임당이 고액권 지폐의 도안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엉뚱하게 동시대의 여성 허난설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란 글에서 신영복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애일당 옛터에서 마음에 고이는 것은 도리어 그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정한(情恨)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던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오죽헌을 돌아 나오면서였습니다. -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 중에서 선생은 오죽헌을 .. 2019.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