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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부용대3

부용대, 물돌이동[하회(河回)]의 가을 하회와 부용대에 닿은 가을 가을이라고 느끼는 순간, 가을이 이미 성큼 깊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나니 발밑까지 가을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때아닌 한파가 들이닥쳤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시월도 막바지다. 곧 수능시험이고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성큼 깊어진 가을, 부용대로 가다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공연히 어지러운 마음을 가누느라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고 잡다한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오후에 혼자서 집을 나선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을까. 사진기를 챙겨 들고 떠난 곳은 부용대였다. 며칠 동안 자꾸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 풍경과 발밑의 강을 오가는 나룻배가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룻배라고 했지만 기실 그 배는 이미 나룻배가 아.. 2019. 10. 31.
물돌이동[하회(河回)] 주변을 거닐다 화천서원과 겸암정사 - 류운룡의 자취를 더듬으며 병산서원에서 나오던 길을 곧장 풍천으로 향했다. 부용대 아래 겸암정사에 들르고 싶어서였다. 화천서원(花川書院)을 거쳐 화산 부용대 너머 겸암정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병산서원이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모신 서원이라면, 풍천면 광덕리(하회마을 건너편 마을)에는 서애의 형님인 겸암(謙菴) 류운룡(1539∼1601)을 배향한 화천서원이 있다. 1786년(정종 10)에 류운룡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이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병산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라는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훼철 이후 강당과 주소만 남았다가 100여 년간 서당으로 이어져 오던 이 서원은 1.. 2019. 7. 25.
물돌이동[河回] 건너 화천서원과 겸암정사 유운룡의 겸암정사와 화천서원 병산에서 나오던 길을 곧장 풍천으로 향했다. 부용대 아래 겸암정사에 들르고 싶어서였다. 화천서원(花川書院)을 거쳐 겸암정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병산서원이 서애 류성룡을 모신 서원이라면, 풍천면 광덕리(하회마을 건너편 마을)에는 서애의 형님인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을 배향한 화천서원이 있다. 힘의 균형은 부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1786년(정종 10)에 유운룡·유원지·김윤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이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병산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라는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훼철 이후 100여 년간 서당으로 이어져 오던 이 서원은 1996년 묘우와 문루, 동서재와 전사청 등을 .. 2019.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