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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부르노 야센스키2

‘안녕 대자보’에서 영화 <변호인>까지 1. ‘안녕’을 물어온 대자보 한 대학생의 글이 대학과 2013년의 한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적지 않다. 그것은 살기 바빠서든,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냐고 냉소해 왔든 일신의 안녕만 돌아본 우리 자신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다. 내 삶과는 무관하다고만 뇌며 세상을 짐짓 외면하고 살아온 젊은이들과 소시민에게 예의 대자보는 정말 안녕하시냐고 물었다. 그 물음은 또 한편으로 젊은이들이 겪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좌절과 고통, 분노를 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 김수영 시인은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부정한 권력과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자기반성을 통렬하게 노래한 바 있다. 그것은 한편으론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그는 ‘왕궁’과 ‘왕궁의 음.. 2020. 12. 25.
‘무관심’, 혹은 ‘살인과 배신’ 부르노 야센스키(Bruno Yasenskii), ‘살인과 배신보다 무관심’을 경계 1988년, 학교를 옮기고 500만 원짜리 전셋집, 재래식의 '부엌이 깊은 집'에 들었다. 방은 두 칸.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데리고 잤는데, 삐딱한 사다리꼴의 작은방에 내 서재를 꾸몄다. 말이 서재지, 제재소에서 켜 온 합판을 구운 적벽돌로 받쳐놓은 간이 책장이 전부인 초라한 공간이었다. 오래 써 온 크로바 타자기를 그 즈음 막 나온 라이카 전자타자기로 바꾼 때였다. 헝겊 리본이 아닌, 교체할 수 있는 고급 리본으로 인자(印字)되는 선명한 글꼴이 아름다웠고, 한 줄 입력이 끝나면, 자동으로 줄이 바뀌면서 나는 묵직한 기계음이 새로운 물건을 쓰는 즐거움을 새록새록 환기해 주곤 했다. 위의 글은 그때 그 타자로 쳐서 내 보르.. 2019.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