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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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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봄날에는… 가끔씩 어떤 봄날에는 김광규 시인처럼 그러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2008. 3. 16. 낮달 2021. 3. 16.
춘신(春信), 봄소식을 기다리며 비담임으로 맞이한 2011학년도 좀 무심하게 2011학년도를 시작했다. 담임을 맡지 않게 되면서 3층 1학년 교무실에서 1층의 본 교무실로 내려왔다. 학년 교무실에 비기면 두 배는 넘을 널따란 교무실은 지난해 수천만 원을 들인 인테리어 공사로 쾌적해졌다. 사방 내벽을 원목으로 처리해서인지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다는 걸 느낀다. 배정받은 자리도 마음에 든다. 교감 옆자린데, 지난해 학년을 같이 한 동료들 셋이 옹기종기 모였다. 왼편으로 개수대와 정수기, 출입문 등이 모두 가깝고, 뒤쪽의 수납공간도 마음에 든다. 창을 등지고 앉으니 실내가 한눈에 들어와 시원하다. 드나드는 아이들로 부산한 학년 교무실과 같은 활기는 없지만, ‘절간’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도 좋다. 수업 시수는 지난해와 같은데 보충 시간이 줄면서.. 2021. 3. 13.
봄, 혹은 심드렁함 봄이지만 심드렁한 3월 남부라곤 하지만 안동은 경북 북부 지역이다. 봄이 더디다는 뜻이다. 4월에도 이 지방 사람들은 겨울옷을 벗지 못한다. 연일 신문 방송으로 전해지는 꽃소식도 남의 이야기다. 섬진강 근처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제철이라던가. 그러나 주변은 온통 잿빛일 뿐이다. 빈 시간에 잠깐 교사 뒤편의 산기슭을 다녀왔다. 옥련지(玉蓮池) 연못가의 수달래는 아직 꽃눈조차 보이지 않고, 남녘에는 한창이라는 매화가 겨우 꽃눈을 내밀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상기도 쌀쌀한 산 중턱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라도 푸른빛의, 새싹 새잎을 만나고 싶었다. 산 중턱의 낙엽 더미에서 새잎을 만났다.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큼 자라고 있는 돌나물이었다. 안으로 말린 도톰한 잎의 질감이 싱그럽게 마음에 닿아왔다. 3월 중순, 그러.. 2021. 3. 11.
‘자유인’으로 첫발 내딛기 퇴직, 자유인으로 출발 어쨌든 2월 한 달은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과는 무관하게 하는 일마다 두서가 없어서 몸과 마음이 두루 어정쩡하고 애매했다. 딱 부러지게 어떻다고 하지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지도 못하는 요령부득의 시간이 속절없었다. 3월이 눈앞에 다가오자, 나는 새날을 맞을 준비를 하기로 했다. 마지막 일요일 오후엔 머리를 깎았고 다음날 아침엔 공중목욕탕을 다녀왔다. 해마다 새 학년도를 앞두고 만날 아이들을 그리면서 준비하던 일상을 나는 자유인으로 맞이할 날에 고스란히 되풀이한 것이다. 금오산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 토요일엔 금오산 어귀를 찾았다. 얼음 사이에서 봄을 부르는 꽃, 흔히들 복수초(福壽草)라 부르는 얼음새꽃을 찾아서였다. 이 꽃을 검색하다가 경북.. 2021. 3. 4.
‘봄’은 ‘밥’이고 ‘민주주의’다 이성부 시인의 시편 ‘봄’을 읽으며 유난히 지난겨울은 추웠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 게 맞지만 고단하게 살아가는 헐벗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난겨울 추위는 혹독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상의 기온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바깥바람은 차고 맵다. 입춘 지나 어저께가 우수, 그래도 절기는 아는지 어느새 한파는 고즈넉이 물러나고 있는 낌새다. 아직 봄을 느끼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지난겨울’을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의 막바지에 서 있지만 우리는 정작 이날을 겨울로 느끼지 않으며, 우리가 서둘러 온 이른 봄 가운데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계절 가운데 ‘봄’만큼 다양한 비유나 상징으로 쓰이는 게 또 있을까. 일찍이 이 땅에서 ‘봄’은 빛과 희망이었고, 해방과 독립이었다. .. 2021. 2. 21.
우리 반 고추 농사(Ⅰ) 신록(新綠), 고추 심기 4월도 막바지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열공’ 모드로 들어갔고, 며칠 동안 출제 때문에 끙끙대다 다시 맞는 날들이 어쩐지 수상하고 어수선하다. 한 학기가 ‘꺾여서’인지 다소 숨 가쁘게 달려온 두 달간의 팍팍한 시간이 불현듯 막연해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가, 블로그를 살피고 돌보는 일도 시들하고 심드렁해졌다. 모두들 바쁜 모양인지 오블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느껴진다. 이웃들 집을 한 바퀴 도는 일도 뜨악해지고,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 근방에도 가지 않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신록이 그나마 변치 않는 감격을 선사해 준다. 학교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은 조그만 숲인데 이 숲은 시방 .. 2020. 6. 17.
‘버들피리(호드기)’의 계절 아이들 다 컸지만, 추억으로 만들어본 ‘버들피리’ 봄은 물가에 먼저 온다. 마지막 살얼음 아래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냇물, 갯가에 핀 버들개지에 머무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 물가에서부터 파릇파릇 살아나는 풀잎들……. 당연히 시내 곁에 선 갯버들의 미끈한 줄기에도 물이 오른다. 그 물오른 갯버들 가지를 꺾어 만드는 게 버들피리다. 버들피리를 ‘호드기’라고 부르는 지방이 많은 듯한데, 우리 고향을 포함한 경상북도 남부지방에선 이를 ‘날라리’라고 불렀다.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고루 비틀어 뽑은 껍질로 만든 피리다. 어릴 적, 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냇가에선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산에서는 참꽃을 따서 먹으며 놀았다. 들과 산이 모두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던 시절이다. 버들피리 .. 2020. 4. 9.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봄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온 봄 정말, 어떤 이의 표현대로 봄은 마치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느낌이다. 봄인가 싶다가 꽃샘추위가 이어지곤 했고 지난 금요일만 해도 본격 꽃소식은 한 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일교차가 컸던 탓일 것이다. 한낮에는 겉옷을 벗기려 들던 날씨는 저녁만 되면 표변하여 창문을 꼭꼭 여미게 했다. 토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아파트 앞산에 올랐는데, 산길 주변 곳곳에 참꽃(진달래)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출근하는 숲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일요일 오후에 돌아보니 아파트 주차장 어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 동백꽃도 화사했고. 사진기를 들고 나갔더니 화단의 백목련은 이미 거의 끝물이다. 아이들 놀이터 뒤편에 못 보던 매화가 하얀 꽃을 피우.. 2020. 3. 29.
거기 ‘은빛 머리 고승’들, 무더기로 살고 있었네 봉화 닭실마을을 찾아서 어제는 아내와 함께 봉화를 다녀왔다. ‘병아리 떼 종종종’은 아니지만 ‘봄나들이’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연도의 풍경은 이미 봄을 배고 있었다. 가라앉은 잿빛 풍경은 예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햇볕을 받아 속살을 드러낸 흙빛과 막 물이 오른 듯 온기를 머금은 나무가 어우러진 빛 속에 이미 봄은 성큼 와 있는 것이다. 목적지는 봉화의 닭실마을. 도암정(陶巖亭)을 거쳐 청암정(靑巖亭), 석천정사(石泉精舍)를 돌아오리라고 나선 길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법전이나 춘양의 정자들도 찾아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것. 풍경이 좋으면 거기 퍼질러 앉아서 보내리라 하고 나선, 단출하고 가벼운 나들이였다. 닭실마을의 충재 종택 마당에서 이제 막 봉오리가 벙글기 시작한 산수.. 2020. 3. 20.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인용함으로써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이른바 촛불혁명은 무르익기 시작한 것이다. 1.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Q씨에게’라는 꼭지를 만든 건 2011년 가을입니다. 여는 글을 써 올리고 이듬해 벽두에 한 편을 더 보태고 나서는 이 꼭지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고 5년,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겼고 지난해엔 아이들 곁을 아주 떠나왔습니다. ‘퇴직일기’를 닫고 ‘Q씨에게’, ‘쑥골에서 부치는 편지’로 학교를 떠난 뒤엔 ‘퇴직일기’라는 이름의 꼭지에다.. 2020. 3. 5.
봄, 매화, 권주(勸酒) 벗이 보내준 권주시 한 편, 그리고 매화 *PC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여 원본(1000×667) 크기로 볼 수 있음. 친구 박(朴)이 카톡으로 한시(漢詩) 한 수를 보내왔다. 제목은 권주(勸酒), 우무릉이라는 이가 쓴 시다. 뜬금없이 웬 권주냐고 되받으면서 시를 읽는데, 그 울림이 썩 괜찮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니 우무릉(于武陵·810~?)은 당나라 때의 방랑 시인이다. ‘금굴치’는 손잡이가 달린, 금색을 칠한 잔이라고 한다. 그 한 잔 술을 권하면서 화자는 상대에게 사양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예사로운 듯하지만, 뒤의 두 구절 뜻이 이래저래 밟힌다. 꽃필 때면 늘 비바람 거세고, 인생살이 이별도 많다……. 때마침 꽃이 피는 때다. 교정의 홍매화가 어저께 봉오릴 맺더니 어느새 연분홍 꽃잎을 열었다... 2019. 3. 17.
미나리, 미나리강회, 그리고 봄 풍성한 봄의 향기, 미니리강회가 밥상에 올랐다 공연히 어느 날, 아내에게 그랬다. 요새 시장에 미나리가 나오나? 그럼, 요즘 철이지, 아마? 왜 먹고 싶어요? 그러고는 나는 미나리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제 아침 밥상에 미나리강회가 올랐다. 서둘러 교회에 가야 하는 일요일 아침이라 좀 약식이긴 했다. 그러나 입안에서 퍼지는 그 향은 예전 그대로다. 아침상에 오른 미나리강회 인터넷에서 미나리를 검색했더니 한 지방 신문의 미나리 수확 기사가 뜬다.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이란다. 미나리꽝에서 농민들이 얼음을 깨고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는데 정작 그게 미나리꽝인지 어떤지는 금방 짚이지 않는다. 얼음에 덮인 논에 비치는 것은 웬 붉은 빛이 도는 나뭇잎 같은 것일 뿐이다. ‘미나리를 심는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한다.. 2019.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