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변화4

‘용의 해’, 혹은 역사에 대한 희망 2012년, 임진년 새해를 맞으며 진짜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해에다 간지(干支)를 붙이는 것은 오랜 태음력의 관습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태양력에 이 태음력의 간지를 미리 써 버린다. 양력 새해를 맞으면서 앞당겨 음력 간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는 것이다. 올해는 임진(壬辰)년, 용의 핸데 아홉 번째 천간(天干)에 해당하는 ‘임(壬)’의 색이 ‘흑’이어서 ‘흑룡’의 해란다. 흑룡은 비바람의 조화를 부리는 상서로운 짐승, 나라의 극성스러운 어머니들은 이왕 낳는 아이를 흑룡의 해에 맞추어 나으려고 온갖 꾀를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래 이 나라는 수천 년 동안 지내온 ‘설날’을 공식 명절에서 제외해 버렸다. 이른바 ‘왜놈 설’이 공.. 2022. 1. 24.
언어의 민주화, 역시 “국민이 ‘갑’이다” ‘국민 앞에 대통령을 표현할 때는 대통령을 낮추는 게 맞는 어법’ 언어 예절을 중시하는 우리말에서는 존비법(尊卑法), 높임과 낮춤의 어법이 발달했다. 거기다 ‘압존법(壓尊法)’도 있다.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는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이다. 예컨대 할아버지(청자)에게 아버지(문장 주체)를 이를 때 아버지를 높일 수 없는 것이다. (1)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직 안 왔어요.(○) (2)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아직 안 오셨어요.(×) 가정에서는 압존법을 지키는 것이 전통 예절이지만 현재는 가정에서의 압존법도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다.[국립국어원, ‘표준화법 해설’(1992)]. (1)처럼 말해야 하는데 (2)처럼 말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 2021. 6. 26.
김주대 시집 <그리움의 넓이> 김주대 시집 사춘기 시절부터 만만찮은(?) ‘문학소년’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단 시를 쓴 적이 없다. 두어 차례 시 비슷한 걸 끼적이긴 했는데, 동무들의 한 마디로 ‘기똥찬’ 시 앞에 그걸 들이대기가 거시기해 슬그머니 구겨버린 게 고작이다. 소설에 뜻을 둔 친구들도 습작시절에는 시도 심심찮게 쓰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시라면 아예 손사래부터 치곤 했다. ‘습작시대’를 마감하고 ‘독자’로 돌아오던 20대의 끝 무렵에야 그게 내가 가진 ‘쥐꼬리만 한 재능’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가서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한 서너 해쯤 머물러 있기를 바랐던 교직이 평생의 업이 되었다. 초임 시절엔 입에 거품을 물고 시나 소설을 주절댔지만, 내 문학 수업의 수준은 교재에 .. 2021. 2. 6.
‘순박한 민얼굴’, 화전리도 변했다 경북 의성 ‘산수유 마을’ 화전리의 변화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의 산수유를 보고 와서 첫 기사를 쓴 때가 2007년 4월이다. 그 첫 기사의 제목을 나는 “순박한 민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라고 붙였다. 산수유 마을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을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전리 산수유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 밀려드는 관광객을 겨냥해 서투른 분칠을 거듭하면서 망가지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화전리에는 러브호텔은 물론 음식점도 하나 없다. 동전 한 닢 떨구지 않고 왔다 가는 상.. 2019.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