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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벌초4

정해(丁亥) 설날, 성묫길 2007, 정해년 설날 얼마 전에는 ‘젊은 여자’가 밟힌다고 야살을 떨었지만, 늙은 안노인들이 눈에 밟히기는 훨씬 오래된 일이다. 노인들의 모습에는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소 구부정한 허리, 조심스런 걸음걸이, 육탈(肉脫)이 진행되는 듯한 깡마른 몸피, 불그레한 홍조가 가시지 않는 눈자위 등은 그 황혼의 가슴 아픈 징표들이다. 어머니께서 가신 지 벌써 네 해가 흘렀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일상에 일찌감치 익숙해졌는데도 주변에서 만나는 안노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끔 시간이 되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는 건 순전히 회한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공중파 방송을 보다가 혼자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길러 준 조모를 버리고 오래 소식을 끊었던 한 청년이 할.. 2022. 2. 26.
벌초 이야기(3) 연례행사 벌초가 돌아왔다 집안 형제들 모이는 연례행사 벌초 어제 벌초를 다녀왔다. 걱정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축축한 날씨가 좀 더웠다. 아침 7시 반에 집안 형제들과 만났다. 손아래의 10촌 동생과 그 아래 8촌 셋이 모여 다섯이다. 지난해 결혼한 막내는 올핸 빠졌다. 그러나 다섯이 모이면 든든하다. 연례행사 ‘벌초’ 준비하기 벌초는 연례행사다. 한가위를 앞두고 인동에 사는 10촌 동생이 ‘아무 날에 벌초한다’는 통문을 돌리면 나는 슬슬 바빠지기 시작한다. 먼저 창고에서 예초기를 꺼내 이것저것 손질해 둔다. 일 년에 단 한 번 쓰고 처박아 두지만, 이 기계가 벌초의 성패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날이 일주일쯤 앞으로 다가오면 페트병에 사 온 휘발유를 윤활유와 섞는다. 비율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대충했다가 기계가 통 힘을 제대로.. 2019. 8. 31.
벌초 이야기(2) 다시 ‘벌초’를 생각한다 벌초 이야기(2) 지난 일요일에 벌초를 다녀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시작한 작업은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었다. 산소 두 군데를 마칠 때쯤 거짓말처럼 날이 갠 것이다. 아침 내내 퍼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반짝 나면서 우리는 오히려 땀깨나 흘려야 했다. 지난 주말에 미리 치렀거나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인지 산에는 벌초하는 이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부산과 대구에서, 그리고 안동에서 내려간 나까지 모두 여덟이 모인 이번 벌초는 일꾼이 많아서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모두 종형제간인데 내가 그중 손위다. 자연히 일은 동생들이 주로 하고 나는 어정거리다가 자투리 일이나 챙기면 된다. 우리가 벌초해야 할 산소는 모두 15기다. 그것도 한군데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네 군데 산에 각각 흩어.. 2019. 8. 2.
벌초 이야기(1) 다시 벌초의 계절이다 다시 벌초의 계절 벌초 시즌이다. 좀 이르게 서둔 이들은 벌초를 마쳤을 게고, 미룬 사람은 다음 주말도 바쁠 터이다. 아마 지난 주말부터 전국의 묘지를 품은 산마다 예초기 소리가 진동했을 게다. 벌초하다 다치거나 벌에 쏘여 경을 친 사람들 기사가 가끔 보도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불운은 스쳐가는 후일담에 그칠 뿐이다. 벌초는 마땅히 ‘산 사람’, 후손들의 의무인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벌초를 다녀왔다. 늘 동행했던 아들 녀석 없이 혼자 떠나는 길은 좀 서글펐다. 1시간쯤 후에 목적지에 닿았다. 내 본관인 인동(仁同)은 칠곡군이었다가 나중에 구미가 공단으로 도시화하면서 거기 편입된 동네다. 인동 황상동에는 지금 우리 작은집 일가가 모여 살고 있다. 원래는 내 고향 윗동네에서 살았지만, 거기도 공단이 들어서면.. 2019.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