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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벌레2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배추벌레와 교감하는 시인, 그러나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2020. 7. 22.
[2010 텃밭일기 ⑥]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다 ‘장마’라더니 정작 비는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잠깐 내리다 그친다. 변죽만 울리고 있는 장마철,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그래도 두어 차례 내린 비는 단비였던 모양이다. 밭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새파랗게 익어가는 작물들의 활기가 아주 분명하게 느껴진다. 밭을 드나들 때마다 저절로 이웃집 고추와 우리 걸 비교해 보게 된다. 밭 어귀의 농사는 썩 실해 보인다. 이들의 고추는 키도 훤칠하니 클 뿐 아니라 대도 굵고 전체적으로 고르게 자라서 한눈에 턱 보면 농사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것이 탐스러워 보’여서 만은 아니다. 파종 시기도 빨랐고 제대로 가꾸어 준 표시가 역력한 것이다. 밭 주인이 성급하게 뿌려준 비료로 골병이 들었던 우리 고추는 거기 비기면 뭐랄까, 그간 .. 2020.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