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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백범2

37살의 나이 차… 백범과 중국 여인의 ‘특별한 동거’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③] 자싱 피난처에서의 백범과 주애보 송칭링능원을 끝으로 청년 백범 답사단은 상하이를 떠났다. 4·29 윤봉길 의거 이래 일제에 쫓기던 백범이 마침내 상하이를 탈출해 도착한 저베이(浙北) 평원의 공업 도시 자싱(嘉興)으로 가는 길이다. 상하이에서 1시간 반, 95km를 달려 자싱으로 들어섰는데 도시의 풍경이 매우 낯익어 마치 한국의 어느 소도시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자싱은 저장성(浙江省) 북부 경항(京杭) 대운하 연안에 있는 수향(水鄕), 곧 물의 도시다. 수만의 사람들이 수나라 때 만든, 전장(鎭江)에서 자싱을 거쳐 항저우(杭州)에 이르는 이 운하에 배를 띄워 놓고 물 위에서 살았다. 자싱에는 저장성 3대 명호(名湖) 가운데 하나인 남호(南湖)가 이 운하와 닿고 있다... 2019. 3. 4.
두 아들에게 남긴 윤봉길의 편지…북받침을 어찌하랴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②] 백범의 한인애국단과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다음 여정은 훙커우(虹口)로 더 잘 알려진 루쉰(鲁迅) 공원이었다. 1927년 상하이로 온 루쉰은 생전에 이 공원을 즐겨 산책하였는데 1956년 그의 유해가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공원 이름도 아예 루쉰으로 바뀐 것이다. 일찍이 영국 원예가가 설계한 서양식 정원 양식의 이 공원을 일약 세계에 알린 이는 스물다섯 살의 조선 청년 윤봉길(尹奉吉, 1906~1932)이다. 그가 일본군의 전승 기념식장에 던진 폭탄이 만주사변 이래 파죽지세로 중국 중심부로 진격하고 있던 일제의 기를 꺾어 놓았던 것이었다. 윤봉길, 진격하는 일제에 폭탄을 던지다 윤봉길은 만보산(萬寶山) 사건과 만주사.. 2019.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