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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배려3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노인들… 세상의 노인들…, 그리고 어버이 경북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반자골. 북쪽으로는 주왕산, 남쪽으로는 구암산, 동쪽으로는 포항의 내연산이 둘러싸고 있는 깊은 산골 마을. 10여 년 전만 해도 대여섯 집이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이윤우(78) 김남연(74) 노부부 한 쌍만 남아 있습니다. 스물둘에 재 너머 포항 죽장에서 시집온 꽃다운 새색시는 스물여섯 살가운 남편과 살며 딸 셋,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성장해 모두 도회지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노부부만 남아 5대째 반자골 고향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힘이 세어 소를 대신해 쟁기를 끄는 게 아닙니다. 소를 키우기에 힘도 들고 경운기가 올라오기에 길이 너무 외져 두 노인네가 옛날식으로 쟁기질을 해 밭을 갑니다. 할머니가 앞에서 끌고 할아버지가 뒤에서 쟁기를 잡지만 지.. 2021. 5. 9.
전화, 함께 나누던 ‘위로와 연대’ 유선전화의 시대는 저물고 상대방과 대화 메시지를 ‘전자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인 전화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성을 극복하게 한, 인류의 혁명적 발명품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하지만, 일상의 안부부터 중요한 의견까지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발명품이 인간의 일상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전화, 인류의 혁명적 발명품 1876년 미국의 그레이엄 벨(Bell)이 발명한 전화가 한반도에 상륙한 것은 1896년 왕실 업무를 총괄한 관청인 궁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였다. 황제와 통화하기 전 신하들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왕의 목소리 앞에 예를 갖추어 4번 큰절을 했다고 한다. 일반인도 전화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1902년이 지나서였다. 강제병합 후 일반가정에도 전화가 보급되고 공중전화도 설치.. 2020. 1. 28.
[근조] 세월호 5주기- ‘에스토니아’ 이후, 혹은 ‘세월호 이후’ 세월호 5주기 16일, 우리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는다. 주변에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특별히 다른 이들보다 야박한 심성을 가진 이여서가 아니다. 단지 남의 고통을 내 것으로 이해하는 힘, ‘공감’ 능력을 스스로 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는가. 그것은 상대의 불행과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던 슬픔이고 분노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하는 것, 역지사지든, 공감이든 그들은 거기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세월호 5년, 정권까지 바뀌었지만,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책임져야 할 보수 정치세력의 끊임없는 방해와 폄훼 탓이다. 그런 뜻에서 1994년 사고 이후 3.. 2019.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