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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묘소2

남명 조식, 경상우도의 ‘의(義)’가 그에서 비롯하였다 [지각답사기 ②]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유적지 함양과 산청 일대를 다녀온 것은 2008년 벽두다. 1월의 두 번째 주말, 나는 두 친구와 함께 지리산 자락의 화림동 계곡 주변과 단속사, 덕천서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 편의 글로 갈무리했다. 한 편은 기사로 쓴 ‘화림동 계곡의 정자 이야기’였고 다른 한 편은 블로그에 올린 ‘단속사 옛터’를 다룬 글이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우리는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있는 덕천서원을 비롯하여 산천재와 세심정, 그리고 선생의 묘소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랐다. 나는 남명 유적을 다녀온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남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어떤 밑천도 내겐 없었던 까닭이다. 나는 80년대 중반부터 학교에서.. 2019. 6. 18.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지난 21일은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의 순국일이었다. 1908년 경성감옥(뒤에 서대문감옥으로 개칭)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지 꼭 110주기였다. 1세기하고도 10년을 더한 그 날, 구미시 임은동의 왕산 묘소에선 왕산 추모식이 열렸다. 그리고 그것은 110년 만의 추모제였다. 왕산은 흔히들 서대문감옥 ‘제1호 사형수’로 널리 알려진 한말 의병장이다. 그는 1896년 김산(金山, 김천)에서 창의(倡義)한 을미의병이었고, 을사늑약에 이어 고종의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된 1907년에 다시 경기도 연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가을에 전국의 의병들이 양주로 집결하여 13도 의병 연합부대를 편성하니 이것이 곧 십삼도창의군이.. 2018.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