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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대중가요3

‘항구와 마도로스’, 기억 속의 노래들 1960년대의 대중가요와 유년 시절 생전 처음으로 유행가라고 듣고 배운 게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었다는 얘기는 일찌감치 한 바 있다. (☞ 바로 가기) 나는 그걸 삐삐선으로 공급되는 이른바 ‘유선 앰프 라디오’의 연속극을 통해서 배웠다. 애절한 이미자의 노래가 환기해 주는 남도의 정서 앞에 나는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남녀 혼성반이었던 학급이 남녀로 갈렸다. 새로 구성된 학급은 낯설었다. 인근 마을 아이들로 구성되었던 4학년 때까지의 학급과 달리 그보다 훨씬 먼 마을의, 키도 크고 인상도 다분히 고약한 사내아이들이 한 반이 된 것이다. 벌어진 잇새로 침을 갈기거나 거친 욕설을 예사롭게 쓰는 이 새 동무들 앞에서 나는 좀 긴장했던 것 같다. 낯선 5.. 2020. 1. 16.
그 강 건너 불빛 -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1960년대 여성 듀엣 은방울 자매의 히트곡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 공중파의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가 있다. 주로 흘러간 옛 노래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대별·주제별로 옛 노래를 들려준다. 저 시기에, 저런 주제의 유행가가 저렇게 많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공연히 그 노래가 떠올려주는 옛날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에 담긴 ‘세월’, ‘시간의 자취’들 유행가에 무슨 심오한 철학이, 삶과 사랑에 대한 대단한 성찰이 담겼을 리는 없다. 그것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가장 대중적인 주제의 삶과 사랑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노래할 뿐이다. 그런데도 유행가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그 노래에 담긴 세월과 시간의 자취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단순히 리듬과 멜로디로서가.. 2020. 1. 4.
노래여, 그 쓸쓸한 세월의 초상이여 유년 시절에 만난 대중가요, 그리고 세월 초등학교 6년을 유년기(幼年期)로 본다면, 나는 가끔 내 유년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의 시기가 아니었나 하고 의심하곤 한다. 무슨 턱도 없는 망발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소리’를 ‘음성’이 아니라 일정한 가락을 갖춘 ‘음향’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매미 소리와 택택이 방앗간 소음의 유년 앞뒤도 헛갈리는 기억의 오래된 켜를 헤집고 들어가면 만나는 최초의 소리는 매미 소리다. 초등시절, 여름 한낮의 무료를 견딜 수 없어 나는 땡볕 속을 느릿느릿 걸어 집 근처의 학교 운동장을 찾곤 했다. 지금도 혼자서 외로이 교문을 들어서는 내 모습이 무성영화의 화면처럼 떠오른다. 거기, 오래된 단층 슬라브 교사, 운동장 곳곳에 자라고 있는 잡초들, 그리고 탱자나.. 2019.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