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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대종교3

[순국] 예관 신규식, 독립 기원하며 25일 단식 끝 순국하다 1922년 9월 25일, 독립 기원하며 25일 단식 끝 순국 1922년 9월 25일,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총리 대리와 외무총장을 지냈던 예관(睨觀) 신규식(申圭植, 1880~1922)이 자신이 선택했던 외교독립 노선의 좌절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정과 삼천만 동포를 잘 보살펴줄 것’을 당부하고 대화조차 거부하고 단식에 들어간 지 25일 만이었다. 숨이 멎기 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정부! 정부’였다. 상하이 임정은 수립된 지 2년여 만에 이념과 출신 지역에 따른 파벌로 인한 내부적 갈등으로 심각한 분열에 처해 있었다. 독립운동의 방법론에 따라 외교독립론(이승만계), 무장독립론(박용만계), 실력양성론(안창호계)이 충돌했고 임정의 대표성 문제도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기된 국민대표회.. 2023. 9. 25.
[오늘] 대종교 개조(開祖) 나철 순교·순국 [역사 공부 ‘오늘’] 1916년 9월 12일, 대종교 개조 나철 자결 순교·순국 1916년 9월 12일은 대종교(大倧敎) 창시자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이 순교, 순국한 날이다. 이틀 전 시봉자(侍奉者) 6명을 대동하고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한 그는 이날,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월 10일, 사당 앞 언덕에 올라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선조의 묘소를 향해 참배한 뒤 그는 “오늘 3시부터 3일 동안 단식 수도하니 누구라도 문을 열지 말라.”고 문 앞에 써 붙인 뒤 수도에 들어갔다. 12일 새벽, 인기척이 없어 제자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니, 그는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힌 유서를 남기고 조식법(調息法)으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나철이 1909년.. 2023. 9. 12.
[순국] 청산리 전투의 주역 대한독립군단 총재 서일, 자결 순국하다 1921년 9월 28일 - 대한독립군단 총재 서일, 자결 순국하다 1921년 9월 28일(음력 8월 27일), 노령 국경 부근 미산(密山)에서 대한독립군단 총재 서일(徐一, 1881~1921)이 대종교 수양법의 하나인 조식법(調息法- 호흡을 멈추는 방법)으로 자진(自盡) 순국하였다. 그때 그는 자유시(自由市) 참변으로 타격을 입고 밀산에서 재기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전날, 소련 적군(赤軍)의 후원을 받은 토비(土匪) 수백 명이 야간 기습하여 진영이 초토화되고 훈련 중이던 숱한 청년 병사들이 희생되자 그는 독립군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지고자 짧은 유언을 남기고 자결한 것이었다. 향년 41세. “조국 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 2023.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