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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단사표음2

그 정자에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보인다 [안동 정자 기행 ①]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晩休亭) 아이들에게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시가(詩歌)를 가르치다 보면 그들은 어쩌면 스스로 엮고 세운 ‘띠집’ 안에 갇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적 부침에 따라 출사와 퇴사, 유배를 거듭하다 말년에 귀향한 이들 사대부가 하나같이 노래하는 것은 ‘안빈낙도(安貧樂道)’인데, 이는 그 띠집의 중요한 들보인 듯하다. 선비들이 지향한 청빈의 삶 ‘가난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이 명제는 다분히 관습화된 이데올로기의 냄새를 풍긴다. 유배지의 문신들이 눈물겹게 노래하는 ‘님’에 대한 ‘단심(丹心)’이 분홍빛 연정이 아니라 저를 버린 임금에게 보내는 정치적 구애인 것처럼, 그것은 향촌에서 보내는 만년의 삶에 대한 일종의 강박으로 느껴.. 2019. 9. 28.
박과 박나물, 혹은 유전하는 미각 박과 박나물, 그리고 미각의 유전 아내가 장모님 농사일을 거들어 드리고 오면서 박 몇 덩이를 가져왔다. 김치냉장고 위에 얹어놓은 박 두 덩이가 소담스럽다. 흔히들 맵시가 얌전한 사람을 일러 ‘깎아놓은 밤송이’ 같다고 하는데, 싱싱한 꼭지를 세우고 처연하게 서 있는 박의 모습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것이다. “깎아놓은 밤송이 같다더니…….” “그렇죠. 너무 사랑스러워서 칼을 대기가 망설여진다니까…….” ‘초가지붕 위의 박’은 이제 옛말 우리 어릴 적에는 박은 초가집 지붕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던 열매였다. 박속은 나물로 먹고 속을 파내고 삶은 박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썼다. 따로 재배할 땅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심어서 지붕 위로 줄기를 올려두면 저절로 자랐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바가지.. 2019.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