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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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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종이신문’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 넘치는 인터넷, 온라인 신문에도 ‘종이 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 매일 새벽에 현관 앞으로 조간신문이 배달된다. 일어나 문을 열고 신문을 들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객지살이를 시작하면서 시작된 신문 구독은 에서 1988년에 새 신문 로 바뀌었을 뿐 어언 30년이 넘었다. 한때 지역의 지국이 문을 닫으면서 이웃 시군으로부터 우편으로 를 받아 읽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운 좋으면 당일 치 신문을 받을 수 있지만, 운수 사나우면 다음 날 이미 ‘구문(舊聞)’이 된 신문을 받아야 했다. 집배원이 쉬는 일요일에는 신문을 받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읽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신문 없는 하루를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 신문을 받으면 골골샅샅 광고까지 죄다 읽어내던 시절의 얘기다. 신문 없는 .. 2021. 2. 26.
공개 글꼴과 ‘한글’, 그리고 ‘탁상출판’ 공개글꼴과 ‘한글’을 이용한 탁상출판 대대 행정서기병으로 현역 복무 중이었던 나는 1970년대 후반의 마지막 2년여를 중고 레밍턴 타자기를 쓰며 보냈다. 그러나 복사기가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늘 먹지를 썼고 주번 명령 문서를 흔히 ‘가리방’이라 불리던 등사기로 밀어야 했다. 철필로 써서 만든 등사원지를 등사기 판에 붙이고 잉크를 골고루 묻힌 롤러를 밀어서 한 장 한 장 수동으로 인쇄를 하던 시절도 이미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타자기가 나오면서 손이 해방되었고, 곧 복사기와 컴퓨터가 나오면서 이른바 ‘인쇄 혁명’이라 부를 만한 ‘혁신’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1980년에 전역해 대학으로 돌아온 나는 그해 연말께 국산 타자기를 사서 이 혁신의 대열에 동참했다. 나는 수동 타자기에 이어 일제 전자 타자기를 .. 2019. 10. 20.
나의 블로그 편력기 에서 까지, 그리고 심상한 글쓰기 ‘여성 편력기’가 아니라 블로그 편력기라니 재미없는 이야기가 틀림없겠다. ‘여성 편력’은 없기도 하거니와 있은들 여기서 그걸 주절대는 것은 백주대로에 길 막아놓고 고함치는 격이니 더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기웃거린 것은 제법 오래되지 않나 싶다. 의 블로그를 닫고 천리안 에 닻을 내리고 한참 지난 뒤였다. 하루에 여러 번 드나드는 데라서 그 친근감이 이웃집 같았으나 이왕 애플에 집을 지어 놓은 상태여서 시험 삼아 글 몇 개를 올렸다가 지워버렸다. 내 첫 블로그는 에서 문을 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꾸려오던 블로그 를 지워 버린 것은 지난해 4월 중순께다. 모두 70여 편의 글을 썼는데, 마지막 글이 된 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무어 어쩌.. 2019.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