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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농약7

[2017 텃밭 일기 3]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텃밭 고추에 탄저(炭疽)가 온 것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다. 눈 밝은 아내가 고추를 따다가 탄저가 온 고추를 따 보이며 혀를 찼을 때, 나는 진딧물에 이어 온 이 병충해가 시원찮은 얼치기 농부의 생산의욕을 반감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딧물로 고심하다가 결국 농약을 사 치고 나서도 나는 마음이 내내 개운치 않았다. 약을 쳤는데도 진딧물은 번지지만 않을 뿐 숙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무렵 만난 선배 교사와 고추 농사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가 마음에 밟히기도 했다. 집 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이 선배는 부지런한데다가 농사의 문리를 아는 이다. 내가 어쩔까 망설이다가 내 먹을 건데 뭐, 하고 약을 쳐 버렸다고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개처럼 큰돈을 들여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도리가 없.. 2021. 7. 29.
[2021 텃밭 농사 ④] 거름주기와 약 치기 사이… 1. 거름주기와 수확(6월 28일) 첫 수확을 하고 엿새 뒤다. 이제 우리 고추밭은 제법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낸 고랑을 사이에 두고 고춧대는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다. 밭 주인의 눈에는 마치 딱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실팍한 장정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거기 달린 고추의 크기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풋고추로 먹으려고 한 줌을 따 집에 와 재어 보니 15cm 가까이 되었다. 아마 20cm 가까이 자라는 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우리가 고춧가루 스무 근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이처럼 크고 굵은 고추의 품종 덕이다. 이게 장모님이 지은 부촌 고추가 아닌가 싶다. [관련 글 : 장모님의 고추 농사] 내가 건성으로 밭을 둘러보며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는 알.. 2021. 7. 9.
[2021 텃밭 농사 ①] 다시 또 텃밭 농사를 시작하다 1. 퇴비 뿌리기(3월 16일) 해마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의논이 엇갈린다. 아내는 아내대로 왕복 1시간 이상이 걸리는 텃밭 탓을 하면서, ‘기름값 타령’을 하곤 했다. “사 먹는 게 낫지,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 운운하는 이 레퍼토리는 전통과 역사도 깊다. 그러나 이 푸념은 반만 진실이다. 아내가 그걸 이유로 농사를 접겠다고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손바닥만 한 텃밭에 불과하지만, 농사가 주는 기쁨만큼 가끔은 억지로 시간을 내어 텃밭을 돌보아야 하는 부담도 있긴 하다. 이참에 농사를 엎어버릴까 하는 유혹이 전혀 없지도 않은 텃밭 농사를 우리는 10년도 넘게 지어 오고 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텃밭이 남의 땅이 아니라, 장모님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한 주에 두.. 2021. 6. 25.
[2017 텃밭 일기 2] 산딸기, 밭에서 익다 텃밭 걸음이 잦아졌다 요즘 텃밭 걸음이 잦다. 아내가 사흘돌이로 텃밭 타령을 해대고 나는 두말없이 그러자고 날을 받아서 집을 나선다. 주 1회도 쉽지 않던 지난해에 비기면 텃밭 걸음이 잦아진 것은 풀을 매야 해서, 물을 주어야 해서, 진딧물을 살펴봐야 해서 등의 이유 때문이다. “꼴같잖은 농사지으면서 이런 말 하면 거시기하지만, 농작물이 임자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잖우?” “아무렴. 자주 들여다봐야 뭐가 돼도 되겠지.” 농사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자라면서 밭일을 거든 경험이 있는지라, 아무래도 일하는 가락이 좀 다르다. 같이 일을 하다가도 가끔 아내에게 퉁을 맞곤 하는 까닭이다. 힘쓰는 일은 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내 일은 시뻐 보인다 싶으니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 2021. 6. 1.
2020 텃밭 농사 시종기(2) 고추 농사 ① 제대로 짓는(!) 고추 농사 새로 얻은 집 앞 텃밭을 두고 우리가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러나 덥석 받아놓고 못 하겠다고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3월 초순께 농협에서 산 퇴비 2포를 시비(施肥)했다. 농사짓던 땅이라 할 만한 이력도 없는 메마른 땅이라 그거로 해갈이 될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4월 1일에 처가의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18일에 집 앞 텃밭에도 비닐을 깔면서 이랑을 만들었다. 내외가 작업하고 있는데 이웃 농사꾼 둘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역시 공터에 땅을 부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농사 경험은 텃밭 가꾼 게 전부라고 했다. 멀칭을 마치고 그날, 김천 아포에 있는 육묘장에 가서 포기에 500원씩을 주고 고추 모종.. 2020. 7. 12.
[2008] 고추밭, 그 후 얼마 만인가, 그저께 아내와 함께 고추밭을 다녀왔다. 그러려니 하긴 했지만 고추밭은 좀 그랬다. 동료가 심은 두 이랑은 반 넘게 시들었는데, 그나마 우리가 가꾼 이랑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밭에 대왕참나무를 심은 동료에게서 얻은 모종이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우리가 시장에서 사다 심은 고추 모종은 키는 작지만 비교적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먼저 심었던 고추 모종은 웃자라 줄기도 잎도 부실한 상태에서 꽃이 피면서 자기 성장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몇 포기는 고추 열매를 맺었다.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상태에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어린 나이에 배가 부른 소녀를 보는 것처럼 안쓰러웠다. 고추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인데도 고랑마다 이어지고 있는 바랭이의 기습은 .. 2020. 6. 19.
[2017 텃밭 일기 ①]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텃밭 농사와 농약, 그 ‘윤리적 딜레마’ 지난해 농사는 좀 늦었었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좌충우돌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새 5월이었다. 시기를 놓쳤는데 농사가 되기는 할까, 저어하면서 텃밭에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은 게 5월 하순이었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 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미리 이랑을 지어 검은 비닐로 씌우는 이른바 ‘멀칭’ 과정을 생략하고 시작한 농사에 우리는 잔뜩 게으름을 피웠던 것 같다. 매주 한 번꼴로 밭을 둘러보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밭에 들르는 일이 뜸해졌던 것이다. 9월 중순께 다시 들렀을 때 텃밭은 바랭이와 쇠비름 같은 풀이 우거져 마치 흉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임자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졌어도 우리 .. 2020.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