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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노화10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3) ‘현명하게 늙어가기’는 과욕, ‘면(免) 노추(老醜)’ 도 쉽지 않다 “마흔이 되면 불혹(不惑)이라더니, 어떻게 나는 이런저런 유혹에 자꾸 마음이 기우는지 모르겠어.” 마흔 살을 갓 넘겼을 무렵, 내가 벗들에게 건넨 푸념이다. 미혹되지 않음은 공자 같은 성인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을 터인데도 이런저런 욕망을 내려놓기가 버거워서였다. 그러나 한가하게 그걸 한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던 나는 그러구러 그 시기를 넘겼다. 공자의 불혹, 나는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렸다 인간의 수명을 팔십으로 가정하면 마흔은 그 한가운데다. 2, 30대 열정의 시기를 지나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서정주 ‘국화 옆에서’) 나이인데, 이 마흔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서양이 비슷하다. 링컨이 남긴 명언, “마흔 살이 되면 인간은 자.. 2023. 2. 1.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2) ‘신체적 변화’와 ‘죽음’의 인식 ‘늙는다’라고 느끼는 것과 그걸 입 밖에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예전 같으면 환갑을 넘기면 노인으로 불리었지만, 요즘엔 환갑은 여느 생일과 다르지 않아 기념일에도 넣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몸은 노화 현상을 깨달아도 그걸 화제로 삼는 걸 꺼리게 되는 것이다. 어쩐지 ‘노화’를 이야기하는 게 민망해서 ‘나이 들면서’ 같은 중립적 표현을 쓰게 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명확한 자각 증성으로 다가오는 ‘노화’ 내가 처음으로 ‘노화’를 인식한 게 쉰으로 접어들던 2006년도였던 것 같다. 그해 신년 벽두에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라는 글을 쓴 것이다. 나는 내리막을 내려가거나 쉽지 않은 틈새의 개울 같은 헛방을 지날 때 뛰어넘는 대신 저도 몰래 다른 경로를 찾으려.. 2023. 1. 14.
배우들, 그 ‘부침(浮沈)’과 ‘노화’ 을 가르치며 그 삶의 대역, 배우를 생각한다 가끔 소설 작품을 공부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작품을 각색해 영화로 만들 때 주인공 역을 맡을 배우’를 ‘캐스팅(casting)’해 보자고 이야기하곤 한다. 잠깐 우리가 제작자나 감독이 되어 봄으로써 인물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게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배우가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연급 연기자들에 대한 관점이 아직 성숙해 있지 않아서다. 즉 아이들은 주연급 배우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조연을 흘낏대기보다는 빛나는 주인공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보는 건 사춘기 아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일지도 모른다. ‘삼포 가는 길’의 배우들 황석영의 ‘삼.. 2021. 12. 16.
연식(年式), ‘건강’과 ‘노화’ 사이 노화를 ‘연식’이라 부르듯 인체도 오래 쓰면 낡는다 나는 어버이로부터 비교적 건강한 몸을 물려받았다. 글쎄, 병원에 입원한 게 한창 젊은 시절에 다쳐서 몇 주 동안 입원한 게 고작이니 건강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터이다. 흔한 고뿔도 콧물과 기침으로 며칠을 버티면 시나브로 낫곤 했고 남들은 곤욕을 치른다는 몸살로도 몸져누워본 적이 없을 정도다. 물론 젊을 때 얘기다. 감기가 쉬 낫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50대 후반부터였던 듯하다. 그러다가 신종 플루에 걸려서 곤욕을 치른 게 퇴직 무렵이다. 지난해부터 아내와 함께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독감 예방주사를 챙겨 맞게 된 것은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아서다. 아픈 건 일시적 현상 아닌 ‘노화의 과정’이다 목과 어깨 부위의 통증이 쉬 가시지 않다가.. 2021. 8. 2.
겨울나기 ‘내복’과 차표 ‘사고’ 내복 입기, 그리고 차표 실수를 몇 차례 저지르다 이번 겨울을 나면서 여느 겨울과 달라진 것은 간간이 내복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내복을 벗어버린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복을 입으면 따뜻해서 든든하다기보다는 답답한 느낌이 컸던 것은 한창때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 무렵엔 옷을 입어도 맵시가 통 나지 않는다며 내복을 입는 친구도 거의 없었다. 군 복무 시절엔 멋보다는 방한이 더 요긴한 문제여서 지급받은 겨울 내의를 절도록 입고 지냈다. 겨울을 나면서 내의를 빨아보면 서너 번씩 헹구어도 아크릴 사(絲)의 갈색 내복에선 땟물이 끝도 없이 우러나올 정도였다. 제대하고 나선 다시 내복과 멀어졌다. 아예 안 입은 것은 아니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내복을 챙겨 입곤 했지만, 그런 날이 겨우내 몇 .. 2021. 1. 2.
병, 혹은 ‘몸의 배신’?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병, 몸의 배신일까 11월의 첫 주말인데 근 열흘째 나는 두문불출 중이다. 지난달 27일 산을 오르다 오른쪽 종아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10일에는 경주 남산 답사를, 12일에는 서울을 다녀올까 하는데 그때까지 다리가 말끔히 낫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좀 답답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란스러웠던 시간을 넘기고 간신히 생활이 가지런해졌다 싶어진 게 10월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넘게 산을 다녀오고, 음식 조절을 하면서 체중도 얼마간 빠졌고 아내도 예전의 평상심을 되찾았다. 독감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지난겨울의 막바지에 둘 다 호되게 독감을 앓았던지라 아내는 올겨울엔 꼭 독감 예방접종을 하자고 했다.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예방접종 소식을 확인한 뒤 19일에 우리는 보건소를 찾았다. 민간 .. 2020. 12. 28.
‘나이 듦’ 받아들이기 ‘나이 듦’이든, ‘노화’든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면서 며칠간 미뤄두었던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건강진단에서 나는 고지혈증 의심 판단을 받았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난달부터 약을 먹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약이 떨어졌고 새로 약을 처방받으러 다시 병원에 들른 것이다. 내가 들른 병원은 가정의학과 의원이다. 젊은 의사가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긋한 자세로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진료해 주어서 우리 가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조금 불안해지는 기분을 간신히 가누고 있었다. 지난번 진료에서 혈압을 재고 의사는 ‘많이 높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해 치른 두 번의 내시경 검사 때 쟀을 때 정상이었다고 대답하면서 무언가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혈압.. 2020. 5. 19.
몸, 삶, 세월 삶과 세월 속에 쇠락하는 몸 언제부터인가 옷을 벗으면 편해졌다. 겉옷이 아니라 속옷까지 죄다 벗고 알몸이 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세상, 선택은 자유롭지 않다. 옷을 벗고 있어도 가능한 공간이란 고작 욕실 정도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아도 침실을 넘지 못한다. 알몸이 될 수 있는 상황이란 거기가 거기다. 욕실에서 몸을 씻거나 침실에서 속옷을 갈아입을 때다. 몸을 씻고 나서 속옷을 꿰는 일이 번거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집안에 아내만 있을 때는 맨몸으로 욕실을 나선다. 그리고 이 방 저 방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볼일을 본다. 처음에는 민망해하던 아내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알몸, ‘옷’으로부터의 해방 옷으로부터의 해방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2020. 3. 13.
‘노화’가 슬슬 두려워지는가 몸으로 느끼는 ‘노화’, 그리고 드라마 텔레비전 드라마를 ‘안 본 지 꽤 되었다’라고 쓰다가 헤아려보니 반드시 그런 게 아니다. 이른바 ‘본방을 사수’한 드라마는 ()과 () 정도였던 것 같다고 쓰는데 다시 얼마 전에 이성민이 주연한 () 역시 거기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드라마 선호’가 노화의 증거? 딸애가 서울에 있는 제 남동생에게 내 근황을 전했더니 녀석이 그랬단다. 아버지께서 드라마를 즐기시는 것 같은데 그건 노화나 여성화의 한 증상일 수 있다고. 그럴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드라마를 즐겨 본다’라고 쓰는 게 훨씬 사실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일부러 텔레비전을 피하지 않는 이상, 딸애가 ‘드라마의 여제(女帝)’라 부르는 아내와 생활하면서 드라마를 아주 안 .. 2020. 2. 20.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10년 넘게 써 온 글이 천 편이 넘었지만, 그 가운데 몇 편이나 '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시 부끄러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긴 하다. 글을 쓴 때와 내용 분류와 관계없이 무난히 읽히는 글을 한 편씩 다시 싣는다. 때로 그것은 허망한 시간과 저열한 인식의 수준을 거칠게 드러내지만, 삶의 편린들 속에서도 오롯이 빛나는 내 성찰의 기록이다. 나날이 닳아지고 있는 마음의 결 가운데 행여 거기서 예민하게 눈뜨고 있는 옛 자아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써 놓고 보니 꼼짝없는 신파다. ‘인간은 서서 걷는다’는 진술과 다를 바 없는 맹꽁이 같은 수작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뚱이와 그 기관의 노.. 2018.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