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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나석주2

[순국] 의열단원 나석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하다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 동척에 투탄, 자결 1926년 오늘, 이틀 전 중국에서 인천항으로 귀국한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 1892~1926)는 찬바람이부는 경성 거리, 조선식산은행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싼 폭탄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주머니 속에 권총을 숨기고 있었다.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의 산업 정책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으로 일본제국의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이었다. 식산은행은 채권으로 확보한 일본 측 자본을 조선의 산업 기관과 개인에게 빌려주고, 그로부터 회수한 원금과 이자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금융기관이었다. 수탈기관 동척에 폭탄을 던지다 식산은행의 창구는 연말이라 일본인 고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벗기고 안전.. 2023. 12. 28.
후미진 중국 골목에 한국인이 줄을 서는 이유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①] 상하이, 1919년에서 1932년까지 광복 70년, 서른여덟 명의 ‘청년 백범 4기’ 답사단은 지난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아래 임정)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임정의 중국 내 이동 경로는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치장(綦江)을 거쳐 충칭(重慶)까지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우선 창사로 옮기기 직전의 난징(南京)까지다. 지난 세기,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배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옮겨 다닌 수백, 수천, 수만 리의 길을 21세기의 후손들은 비행기로 날아 전세 버스를 타고 따른다. 그들이 일제에 쫓기며 꾸려야 했던 풍찬노숙 16년(191.. 2019.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