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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김억2

안서(岸曙) 김억, 친일부역도 ‘오뇌의 무도’였나 조선 최초의 번역시집과 창작시집을 낸 소월의 스승 안서 김억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우리나라 신문학의 첫 장을 연 사람들이 대부분 친일파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최초의 신체시를 쓴 최 남선, 첫 번째 신소설을 쓴 이인직, 최초의 현대시 「불놀이」의 주요한, 첫 현대 소설 「무정」의 이광수가 바로 그들이다. 안서(岸曙) 김억(金億, 1896~?)도 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21년 1월에 프랑스 상징파의 시를 중심으로 한 조선 최초의 현대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를 번역해 펴냈고, 같은 해 6월에는 조선 최초의 현대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출판하였다. 소월의.. 2021. 1. 29.
[오늘] 77년 전 오늘 일본의 결정은 결국 오판이었다 [역사 공부 ‘오늘’]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진주만 공격 일요일 아침의 기습 공격 1941년 12월 7일(도쿄시각으로는 12월 8일)은 일요일이었다. 날씨는 맑았고, 하와이 오아후섬의 진주만(Pearl Harbor)에 있던 미국 해군기지는 평화로운 휴일 아침을 맞고 있었다. 7시 30분에 일본 함대를 이륙한 일본군 비행기 360대는 아무 제지 없이 섬에 접근했고 7시 49분에 비행 총대장은 전군 돌격을 명령했다. 태평양전쟁의 시작이었다.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배는 일본 폭격기의 완벽한 목표가 되었고 휴일 아침이어서 미군의 대비는 거의 없었다. 최대의 기습 효과를 노린 일본의 선택이 성공한 것이었다. 비행기도 비행장에 정렬해 단지 몇 대만이 비행 중이었다. 미국 전함은 일본기에 치명타를 입었다... 2018.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