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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김수영4

[오늘] 가장 ‘젊은 정신’ - 시인 김수영 떠나다 1968년 6월 16일, 시인 김수영 교통사고로 떠나다 1968년 오늘(6.16.),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이 48년의 짧았던 삶을 마감했다. 전날 밤 소설가 이병주, 시인 신동문과 함께 술을 마신 뒤 귀가하다 버스에 치였던 시인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신동엽(1930~1969)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 김수영은 그렇게 덧없이 세상을 떠났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출신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도쿄상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가족들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였다. 김수영은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연희대에 편입했다가 중퇴하였다. 모더니스트에서 참여 시인으.. 2023. 6. 16.
‘안녕 대자보’에서 영화 <변호인>까지 1. ‘안녕’을 물어온 대자보 한 대학생의 글이 대학과 2013년의 한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적지 않다. 그것은 살기 바빠서든,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냐고 냉소해 왔든 일신의 안녕만 돌아본 우리 자신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다. 내 삶과는 무관하다고만 뇌며 세상을 짐짓 외면하고 살아온 젊은이들과 소시민에게 예의 대자보는 정말 안녕하시냐고 물었다. 그 물음은 또 한편으로 젊은이들이 겪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좌절과 고통, 분노를 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 김수영 시인은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부정한 권력과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자기반성을 통렬하게 노래한 바 있다. 그것은 한편으론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그는 ‘왕궁’과 ‘왕궁의 음.. 2020. 12. 25.
‘부분적 언론자유국’ 대한민국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프리덤하우스의 ‘2014년 언론자유 보고서’ 관련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의 일갈을 떠올리는 것은 그 본연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언론 현실 때문일 것이다. ‘부분적 언론자유국’ 대한민국 드디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세계 순위가 68위로 떨어졌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www.freedomhouse.org)가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언론자유지수는 32점(점수가 낮을수록 자유도는 높다.)으로 세계 순위가 68위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2011년에 잃은 ‘언론자유국’ 지위를 되찾기는커녕 이번에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부분적 언론자유.. 2020. 5. 6.
박인환,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 박인희가 부른 박인환의 즉흥시 ‘세월이 가면’ 얼마 전 김수영을 가르치면서 1950년대 동인 활동을 같이 했던 박인환(1926~1956)을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 그의 시 와 을 읽어주었고, 그가 보여준 댄디즘과 1950년대의 분위기를 잠깐 언급하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로 박인환과 만났다. 중학교 3학년, 한림(翰林)출판사에서 간행한 하얀 색 하드커버의 , 그 세로쓰기 시집에서 만난 그 시를 나는 금방 외워버렸다. 지금도 더듬지 않고 그 시를 외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 때의 흐려지지 않은 총기(聰氣) 덕분이다. 가 무엇을 노래한 시였던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장황한 서술 속에 자리한 ‘문학’과 ‘인생’ 따위의 낱말들에 열여섯 문학소년은 매료되어 버렸던 것이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2018.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