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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김대중6

[오늘]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대통령,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 2000년 오늘, 고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은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메인 홀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홀은 그가 추진해 온, 남북 화해를 위한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노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김대중은 같은 해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선언’을 이끌어낸 바 있었다. [관련 글 : 6·15 - 남북 정상, ‘평화와 통일’을 위한 최초의 악수] 두 달 전인 10월 13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 군나르 베르게가 밝힌 선정 이유는 짧았지만, 김대중이 감내한 수난과 고통의 .. 2023. 12. 8.
[오늘] 6·15 - 남북 정상, ‘평화와 통일’을 위한 최초의 악수 [역사 공부 ‘오늘’] 2000년 6월 15일, 김대중·김정일의 역사적 ‘남북공동선언’ 2000년 오늘(6월 15일),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남북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나 이틀간(6.13~15.)의 회담 끝에 이루어낸 값진 결실이었다. 반세기만의 만남, ‘평화와 통일’ 논의 한민족이면서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 데는 무려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러야 했던 남북의 정상이 만나게 된 것은 분단의 질곡을 넘으려면 필요한 것이 ‘이념’ 아닌 ‘민족 동질성’이란 점을 확인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2년 만에 만난 남과 북의 최고 당국자들이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평화’와 .. 2023. 6. 14.
[오늘] 전두환의 신군부, ‘군사 반란’으로 군권을 장악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일당, 쿠데타로 군권 장악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 체포 안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소장)은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대령),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대령)에게 정승화 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오후 7시에 허삼수와 우경윤은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소속 병력 50명을 총장 공관에 투입했다. 헌병들은 총장 공관을 지키던 해병대 병력을 제압하고 공관에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헌병대 사병 1명이 총상을 입고 숨졌다. 7시 21분, 두 장교는 정승화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대통령 재가 없는 육참총장 연행, 하극상의 극.. 2022. 12. 12.
두 전직 대통령은 왜 <국방백서>에 빠진 걸까 두 진보 대통령을 백서에서 뺀 국방부 눈 밝은 누리꾼의 눈에나 띌 단신 하나가 보도된 것은 지난 21일이다. 홍진수 기자의 기사 “국방·외교 대통령이 ‘국방백서’에서 빠졌는데…누구?”다. 기사의 요지는 국방부가 발간한 ‘2012 국방백서’ 특별부록의 한미 동맹사 연표에 실린 사진에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있지만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사에서 빠진 ‘전직 대통령들’ 국방백서는 그간 국방정책과 관련 자료 등을 총정리해 국내외에 알리는 목적으로 국방부에서 격년으로 발간하는 백서다. 국방부는 이번 백서에 ‘한미동맹의 과거·현재·미래’란 특별부록을 모두 8쪽(268~275)에 걸쳐 실었다.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한미동맹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 2020. 12. 23.
DJ의 죽음으로 그들은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대중 10주기] 다시 ‘김대중’을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는 박정희와 유신독재가 만든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최대 피해자이자 희생자였다. 그는 국민의 절반에게는 자유 민주주의 지도자로 추앙받았지만, 나머지 절반으로부터는 경원당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경륜을 가진 정치인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한 주권자는 절반에 그쳤다. 그는 일평생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했고 영남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피해를 보았고 편견과 멸시를 당했지만, 그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가 감내해야 했던 지역감정과 이데올로기, 편견과 멸시는 어떤 합당한 근거도 없는 가해 측의 일방적인 재단이었을 .. 2019. 8. 16.
온달과 노무현, 그 ‘경멸과 증오’의 방정식 온달산성에서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생각한다 “오늘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이 문장은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나무야 나무야, 2001)의 첫 문장이다. 내가 가족과 함께 단양의 온달산성을 다녀온 것은 지난해 이맘때, 대통령 선거일이었지만, 오늘은 같은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온달산성이 있는 충북 영춘은 내가 사는 데서 100여 Km쯤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다. 이 조그마한 시골 언저리에 길게 누운 427m의 성산(城山)에 세워진 길이 922m, 높이 3m의 반월형 석성이 온달산성이다. 중3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이 글을 내리 세 해 동안 가르쳤지만 정작 나는 거기 가보지 못했었다. 문학작품 속의 배경.. 2019.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