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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글쓰기7

‘글쓰기’의 괴로움 글쓰기는 괴롭다 심심파적 삼아 글을 끼적댄 지 예닐곱 해가 지났다. 그런저런 이야기에 그치지만 블로그에 쓴 글이 천 편을 넘기면서 글쓰기가 주는 기쁨이나 성취감만큼이나 그게 주는 스트레스와 괴로움도 커진다. 뭔가라도 써서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서는 얼마만큼 해방되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괴로움은 여전하다. 글쓰기의 기쁨과 괴로움 글 한 편을 쓰는 데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들이는 편이다. 생각의 갈피를 잡고 그 숙성을 기다리며 궁싯거리는 시간을 빼도 그렇다. 초를 잡아놓고도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고, 다 쓴 글도 퇴고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글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쉽게 쓰이는 글은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펼 때나 .. 2022. 3. 21.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15년, 그리고 글쓰기 시민기자 15년과 나의 글쓰기 2006년 12월 첫 기사, 그리고 15년 에 첫 기사를 쓴 때가 2006년 12월이다. 2004년, 노동조합 전임으로 일하다가 학교로 돌아온 그해 나는 담배를 끊었다. 조직 활동에서 놓이면서 그간 늘 모자라기만 했던 시간이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수업하고 쉬는 시간, 흡연에 쫓기던 생활이 끝났고, 나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다음 수업 교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어느 날 그렇게 다가온 넉넉한 시간을 견디는 방법으로 나는 그 무렵 장만한 디지털카메라로 주변의 절집과 정자를 찾아다녔고, 곁들여 그 답사기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쓴 글은 쟁여 놓기 위해서 블로그를 연 것도 그 무렵이다. [관련 글 : 나의 블로그 편력기] 블로그는 ‘다음’에서 처음 열었으나 천리안의 ‘애플’에.. 2022. 1. 10.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고? 설마! 손가락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꽤 오래, 그러니까 서너 달 이상 괴로웠던 오른손 통증 때문에 늘 가던 동네 정형외과 대신 다른 병원을 찾았다. 아니, 서너 달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어깨 통증과 함께 손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으니 이는 거의 여덟 달째다. [관련 글 : 마음과 무관하게 몸은 ‘쇠’한다] 동네 병원에서도 진료를 한 차례 받았는데, 원장 대신 근무하는 늙수그레한 의사는 관절염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해 주었다. 물리치료실에서는 나는 두 번째 파라핀 치료를 받았고 나흘 동안 약을 먹었다.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 다소 차도가 있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병원에 가서(이도 이른바 ‘의료 쇼핑’에 해당하는 걸까?) 제대로 사진도 찍어보자며 몇 날 며칠을 벼른 끝에 시내 쪽.. 2021. 6. 30.
블로그 10년, 다시 새 10년으로 10년을 맞은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 에 블로그를 열고 첫 글을 올린 게 2006년 12월 15일이었다. 애당초 첫 글을 쓰면서도 이 새집을 얼마 동안이나 꾸려갈 수 있을지는 별 자신이 없었다. '다음'과 '천리안'에 각각 블로그를 열었다가 이내 그걸 허물어 버린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블로그 10년(2006~2017) 그러나 햇수로 치면 11년째, 용케도 나는 오늘까지 이 둥지를 꾸려왔다. 전적으로 이는 그만그만한 삶의 장면들을 되새기며 주절댄 내 푸념과 넋두리를 읽고 격려해 준 이웃들 덕분이다. 신통찮은 글을 기사로 만들어 준 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10월 15일에 나는 “블로그 글 1000편에 부쳐”를 썼다. 블로그를 연 지 일곱 해 만이었다... 2020. 3. 18.
자그마치 34년, 쓸모를 다한 너를 보내며 34년을 같이한 책상과 책꽂이를 떠나보내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사들인 가구가 목제 책상이었는데 10년쯤 쓰고 딸애에게 물려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쓰기 시작해 손때가 결은 나무 책상은 아이가 삼십 대 중반을 넘겨 성장한 세월을 우리 가족과 같이했다. 2018년 11월, 어느 저녁 식탁에선가 딸아이가 책상을 버릴까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그래라, 그만하면 오래 썼다, 하고 무심히 대답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초임 시절에 마련한 목제 책상 그 나무 책상은 1984년 초임 교사 시절 단칸방 살림 시절에 산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놈은 내가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겨오고, 거기서 쫓겨난 뒤 해마다 이사를 하고, 5년 후 경북 북부지방의 시골 학교로 복직하고, 다시 몇.. 2020. 3. 5.
글쓰기, ‘종이 위에서 생각하기(think on paper)’ 글쓰기, 성장과 성찰의 과정 좀 민망하긴 하다. 블로그를 열고 ‘나의 블로그 편력기’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절댄 게 2007년 2월 2일이다. 그때 난 뒤 늦게 인터넷에다 ‘생각의 거처’를 마련한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싶었을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심상한 어떤 장면들도 그것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듯하다. 그것은 작게는 기억과 시간의 결과물이거나 오롯한 원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대와 상황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었다. 나는 내 무심한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내 삶에 대한 소박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이 무심한 얼굴 뒤에 감추고 있는 진실의 편린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글에 무어 대단한 메시지 따위가 들어 있다고 믿는 것은 결코.. 2019. 12. 5.
나의 블로그 편력기 에서 까지, 그리고 심상한 글쓰기 ‘여성 편력기’가 아니라 블로그 편력기라니 재미없는 이야기가 틀림없겠다. ‘여성 편력’은 없기도 하거니와 있은들 여기서 그걸 주절대는 것은 백주대로에 길 막아놓고 고함치는 격이니 더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기웃거린 것은 제법 오래되지 않나 싶다. 의 블로그를 닫고 천리안 에 닻을 내리고 한참 지난 뒤였다. 하루에 여러 번 드나드는 데라서 그 친근감이 이웃집 같았으나 이왕 애플에 집을 지어 놓은 상태여서 시험 삼아 글 몇 개를 올렸다가 지워버렸다. 내 첫 블로그는 에서 문을 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꾸려오던 블로그 를 지워 버린 것은 지난해 4월 중순께다. 모두 70여 편의 글을 썼는데, 마지막 글이 된 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무어 어쩌.. 2019.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