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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국적회복2

[순국(殉國)]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 신채호 뤼순 감옥에서 지다 [순국(殉國)] 1936년 2월 21일, 뤼순 감옥에서 지다 1936년 2월 21일, 뤼순감옥에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가 뇌내출혈로 쓰러진 지 사흘 만에 눈을 감았다. 그는 1928년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국제 위폐 사건에 연루되어 타이완 지룽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뒤 193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에서 6년째 복역 중이었다. 향년 56세. 고대사의 정통이 단군에서 부여와 고구려로 계승된다고 주장하며 신라 중심의 를 배척하고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1천년래(來) 제일 대사건’이라 평가했던 역사가, 의열단에 가입하여 무장투쟁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그러나 무려 60년 넘게 무국적자 남아 있었던 사람, 신채호는 그렇게 외곬의 삶을 마감했다. 선배 아나키스트 이회영(186.. 2024. 2. 21.
77년 만의 귀환 - 석주(石洲) 이상룡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분들이니 이들의 국적 회복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 등 독립운동가 예순두 분. 임시정부 수립(1919) 90년 만이다. 이번에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되는 독립지사는 이상룡, 이봉희, 김대락 선생 등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는데, 이봉희1868~1937)는 선생의 아우이고,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은 선생의 처남이다. 석주가 류인식·김동삼 등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1907)를 세웠을 때, 백하는 문중 원로들과는 달리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경.. 2019.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