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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구절초5

‘도토리’ 노략질 이야기 수업 없는 시간에 뒷산 기슭에 무리지어 핀 쑥부쟁이를 찍었다. 후배가 ‘백구자쑥’이라고 한 그 쑥부쟁이다. 보랏빛 쑥부쟁이를 찍었으니 남은 건 흰빛의 구절초[백구(白九)]다. 산이 깊지 않아서일까. 뒷산에는 구절초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동료로부터 어느 골짜기에 가면 구절초가 두어 포기 피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뜻 길을 나서지는 못한다. 그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다른 쑥부쟁이가 더 있지 않을까 싶어 길도 없는 숲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쑥부쟁이를 찾다가 내가 찾은 건 숲에 소복이 떨어진 도토리였다. 꿀밤! 국어사전에서야 ‘도토리’라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게 그것은 ‘꿀밤’이다. 간밤에 분 바람 탓일까. 제법 굵직한 크기의 도토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가으내.. 2021. 10. 16.
보랏빛 아스타 꽃밭에 ‘풍차’까지…여기 진짜 한국 맞아? [여행] 가을 인생 샷 명소, 경남 거창 감악산 ‘꽃&별 여행’ 현장에 가다 감악산(紺岳山, 952m)의 구절초꽃 소식은 기사로 들었다. 감악산? 처음 듣는 산 이름인데도 그 울림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인터넷 검색으로 그게 경남 거창의 안산이라는 걸 알았다. 산 중턱에 있는 연수사(演水寺)는 본디 신라 애장왕 때 감악 조사(祖師)가 세운 감악사였으니, 산과 절, 스님의 이름이 모두 ‘감악’으로 똑같다. 거창군 축제 ‘감악산 꽃&별 여행’ 구절초 꽃을 따라가니 감악산 정상 아래 감악 평전(平田)에서 지난 24일 개막하여 오는 17일까지 베풀어진다는 거창군의 축제 ‘꽃& 별 여행’ 소식이 있었다. 축제 이름에 ‘별’은 밤이면 하늘에서 별빛과 거창읍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붙었다. 나는 주말과 공휴일에 .. 2021. 10. 3.
초가을, 산, 편지 초가을, 북봉산에서 초가을, 산 아직 ‘완연하다’고 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미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새삼 실존적으로 환기해 준다. 어쩔 수 없이 가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기 삶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대기엔 아직은 마뜩잖은 시간이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한 반면 한낮엔 아직 볕이 따갑다. 그러나 그것도 ‘과일들의 완성’과 ‘독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상 릴케 ‘가을날’)을 위한 시간일 뿐이다. 자리에 들면서 창문을 닫고, 이불을 여며 덮으며 몸이 먼저 맞이한 계절 앞에 한동안 망연해지기도 한다. 늦은 우기에 들쑥날쑥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공기가 찬 새벽을 피해 아침 8시 어름에 집을 나선다. 한여름처럼 땀으로 온몸을 적실 일은 없지만, 이마에 흐.. 2021. 9. 13.
‘백구자쑥’을 아십니까?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구별 때로 우리가 가진 상식 가운데엔 그 실체와 벗어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상식의 허실’이다. 뜻밖에 우리의 앎이란 아주 부실할 뿐 아니라, 더러는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 특히 자연에 대한 우리 지식의 깊이는 생각보다 훨씬 얕다. 들이나 숲으로 나가 보라. 우리가 알고 있는 풀꽃과 나무의 목록이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그 빈약한 목록은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나무’ 따위와 같은 황당한 문학적 표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 여러 개체를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것도 그런 가난한 앎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들국화와 참나무는 그 좋은 예다. 편하게 쓰긴 하지만 정작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그것은 국화과의 야생화를 통칭하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참나무도 .. 2020. 10. 19.
꽃은 ‘때가 되어야 핀다’ 다시 만난 ‘나의 산’, 북봉산 지난 8월에 산 아래로 돌아와서 북봉산을 다시 만났다. 5년 전에 만났던 산이지만 지금 내게 북봉은 옛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산은 옛 산이로되 예전의 그 산이 아니로다.”이다. 북봉산이야 물론 5년 전이든 지금이든 똑같이 거기 있는 산일 뿐이다.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산이 변할 리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그 ‘산에게로 갔다’ 변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이다. 무엇이 묵은 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을까. 다섯 해 전에 만난 그 산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스치는 산에 지나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거기 오르긴 했지만, 그 산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나는 자신과 이으려 하지 않았다. 변화는 다시 그 산자락에 남은 삶을 부리고, 서재 이름을 ‘북봉재(北峯齋)’라고 붙이면.. 2020.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