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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광복군3

8월, 함께 창 앞에 서자 여름은 처서(處暑)로 가고 여름은 아직 한참 남았다. 장마 덕분에 더위는 오다가 문턱에 걸린 형국이었으나, 장마가 끝나면서 불볕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차피 절기는 제 갈 길을 간다. 8일이 입추, 14일이 말복이고, 23일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다.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처서’라는 이름을 얻은 이 절기 이후로 시간은 좀 빠르게 지나간다. 7·8월이 어정어정 또는 건들건들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는 ‘어정칠월 건들팔월’인 것이다. 예순한 돌 광복절 15일은 예순한 돌을 맞이하는 광복절이다. 작년에 회갑을 맞았으니 올해는 새로운 갑자(甲子)가 시작되는 해인 셈이다. 갑자가 돌아왔으나 여전히 조국의 분단은 끝나지 않.. 2022. 7. 30.
1945년 8월, ‘독수리작전’과 장준하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 무산 해방, 그러나 무산된 ‘독수리 작전’ 역사에서 가정이란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일인가. 소련이 한 주일쯤이라도 늦게 대일본 선전포고(1945.8.8.)를 하였더라면,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8.6.)가 한 주일쯤 일렀더라면……. 안타까운 것은 장준하 선생 등이 광복군 장교로 미국 전략사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 미국 CIA의 전신) 훈련을 받고 참여한 국내 진공 작전이 무산된 점이다. 장준하(1918~1975), 김준엽(1920~2011, 전 고려대 총장) 등이 1944년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배속된 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광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2019. 8. 15.
중국에서 본 한국인 묘, 비석에 새긴 이름 읽는 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⑤] 난징, 항공열사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아래 임정)가 공식적으로 난징(南京)에 청사를 둔 일은 없다. 훙커우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난 임정은 항저우에서 3년을 머물렀고, 1935년에는 난징과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전장(鎭江)으로 옮겨갔다. 난징에 남은 임정의 자취들 당시 난징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수도였으므로 임정도 난징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임정이 난징 대신 전장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의 협박 때문이었다. 일본 해군은 난징 성안에 임정 청사를 두면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난징을 폭격하겠다고 을러댔던 것이다. 청사는 전장에 두고 임정 요인들은 대부분 난징에 거주했다. 뤄양(洛陽)의 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2019.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