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가족5

매년 되풀이되는 귀성 전쟁, 그 속에 숨겨진 비밀 한가위, 그 ‘만남’과 ‘기다림’의 제의(祭儀) 한가위 연휴가 끝났습니다. 전국의 도로와 수천만 명의 귀성객들이 함께 몸살을 앓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옷자락을 털면서 떠나온 일터로 돌아가겠지요. 9월 하순의 한가위를 지내며 그들은 고단했던 한해살이를 새삼 되돌아보면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맞고 보내는 명절이지만, 올 한가위는 제게 퍽이나 남달랐습니다. 따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번 한가위는 가누기 힘든 ‘설렘’의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던 듯합니다. 그것은 마치 무심한 마음의 여백에 떠오른, 까맣게 잊었다고 믿었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았습니다. 명절이 심드렁하게 여겨지고, 그 연휴의 여유로움이 외려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2022. 9. 10.
남이섬의 5월, 그리고 ‘책 나라 축제’ 남이섬엔 ‘남이’가 없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남이(南怡)섬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드라마 ‘겨울 연가’ 때문인가. ‘겨울 연가’의 남자 주인공 ‘욘사마’가 일본에서 뜨고 일본 관광객들이 이 드라마의 무대로 몰려 들면서였던가. 그러나 나는 그 드라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는 남이섬이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있는 북한강의 강 섬이라는 걸 알았다. 원래는 홍수 때에만 섬으로 고립되었으나, 청평댐의 건설로 온전히 섬이 되었고 남이 장군의 묘소 덕분에 ‘남이섬’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 섬에 있는 묘소는 남이가 이 섬에 묻혔다는 전설의 결과일 뿐, 정작 남이의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경기도 .. 2021. 5. 31.
딸애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다 여행 떠난 아내 대신 딸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다 요즘 남편들은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는 게 ‘기본’이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 ‘기본’도 못하고 살았다. 글쎄, 서툰 솜씨로 억지로 지어낸 음식이 제맛을 못 낼 게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새삼스레 시류를 좇아가는 것도 마뜩잖아서였다. 난생 처음 미역국을 끓이다 배워서라도 해 볼까 물으면 아내는 단박에, ‘됐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편하게 받아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선물을 하거나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주는 걸로 그날을 넘겼고, 미역국은 딸애가 끓이곤 했다. 아내가 지난 월요일에 교회 일로 캄보디아로 떠나고 나서 일이 겹쳤다. 지역 농협에서 판매하는 김장용 배추를 사놓아야 했는데 그건 해마다 우리 내외가 새벽에 나가 함께 해 온.. 2020. 11. 22.
화가 이중섭, 서귀포의 기억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 미술관 답사기 도시는 어떤 형식으로 예술가들을 기억하고 기릴까. 괴테나 쇼팽이나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을 낳은 유럽의 도시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작가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상업적이고 천박하지 않은가 싶다. 지방자치 이후 각 지자체는 지역 출신의 예술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예술가의 이름을 딴 각종 문화제나 예술제 등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이를 관광자원으로 인식한 경제적 관점의 산물이었던 듯하다. 출신 예술가를 관광 상품화하여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의 이해는 눈에 보이는 기념관 등 건물을 짓고 격에 알맞지 않은 동상을 세우는 등의 사업으로 나타난다. 결국, 주변 풍경과의 조화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2020. 1. 23.
사진첩, 함께한 시간과 가족의 발견 오래된 사진첩에 만나는 가족과 세월 어느 날이었던가. 귀가하니 아내가 딸애와 함께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몇 권의 사진첩 중 가족사진만 따로 모은, 좀 두꺼운 놈들이었다. 거의 모두 손수 찍은 사진인데도 새삼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은 그걸 찍을 때의 느낌을 되새기는, ‘감정의 복기(復碁)’ 같은 거라고 생각해 왔다. 10년이나 20년쯤의 시간이라면 그걸 되돌릴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사진이란 놈은 마치 주마등처럼 혹은 파노라마처럼 우리가 고단하게 밟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펼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어쩔 도리는 없다. 그러나 오래된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볼.. 2019.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