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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가일마을2

권오설, 살인적 고문 견디고 ‘6·10만세’를 지켜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②]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 권오설(1897~193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19.. 2020. 12. 30.
‘모스크바 동네’가 배출한 항일운동가 권오설 [항일의 땅과 사람, 안동 ④] 20년대 사회주의 운동, 잊힌 시대와 삶 여기 한 혁명가가 있다. 감옥에서 찍은 일그러지고 바랜 사진 속에서 그는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일제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향년 서른넷. 그의 시신은 일경의 삼엄한 경비로 봉분도 올리지 못한 평장(平葬)으로 고향 인근의 산기슭에 묻혔다. 그 무덤에 봉분이 올라간 건 수십 년이 흐르고 나서였다. 2차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제2대 책임 비서였던 그는 민족해방을 위해 공산주의 노선을 택한 ‘실용주의’ 운동가로 평가되는 이다. 조선공산당의 ‘6·10 운동 투쟁지도 특별위원회’ 총책임자로 6·10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조직했지만, 해방 후 극심한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전쟁을 거친 자본주의 조국.. 2019.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