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D에게 보낸 편지2

사랑은 늘그막에 새롭게 시작되는가 노년의 사랑 어떤 작가는 아내는 ‘장롱’ 같은 존재라고 했다. 아내는 장롱처럼 늘 거기 있다. 그래서 그 존재의 의미를 따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 자신의 ‘부재’를 통해 그 존재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게 해 준다는 얘기다. 그건 자유가 ‘공기’ 같다는 오래된 비유와도 같은 맥락이겠다. 아내는 ‘장롱’이다? 모든 남편에게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그 질문에 서슴없이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자신에게 묻는다. 아내는 내게 무엇인가. 마땅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혼인으로 부부가 되면서 우리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유보해 버리기 때문이다. 삶에서 아내나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반려(伴侶)’라 하여 배우자를 .. 2019. 10. 7.
죽음으로 유예한 이별-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서평]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Lettre a D.: Histoire D’un Amour)』(2006) 불혹을 넘기면서 문득 나는 ‘영원한 사랑’ 따위란 없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망각’이란 꽤 쓸 만한 물건이어서 인간을 사랑의 상실로 인한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구원해 준다. ‘죽도록’ 한 ‘목숨 바친’ 사랑도 그 이별을 받아들이면 잊어버리는 데는 고작 몇 해의 시간으로도 족한 것이다. 내 청년기의 끝에 세상을 떠났던 한 친구의 죽음과 그 이후를 바라보면서 나는 우정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음이란 참으로 얼마나 쌀쌀맞고 냉정한 것인가. 불타는 애정도, 얼음장처럼 식는 사랑도 모두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2019.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