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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년2

동행(同行) 다시 만난 20년 전의 제자들 공교롭게도, 하기야 이 세상에 공교롭지 않은 일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꼭 한 달 만에 두 명의 옛 제자를 만났다. 이미 불혹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이자 지어미인 여제자를 만난 감회는 남다르다. 과장해 말하면, 내 ‘과거’가 그들의 ‘현재’에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두 아이는 내가 초임으로 근무했던 경주지방의 한 여학교에서 내리 세 해를 내게서 국어와 문학을 배웠던 소녀들(!)이었다. 신입생과 초임 교사로 만나 졸업할 때까지 담임으로, 담당 교사로 만났으니, 그 인연의 무게가 만만찮은 셈이다. 그 시절의 갈피마다 서린 내 열정과 과잉의 의욕, 숱한 오류와 실패와 잘못을 나는 부끄러움으로 그러나, 따뜻하게 떠올린다. 스물아홉의 혈기방장한 청년이 열일곱 소녀를 만났다면 그들이.. 2021. 1. 3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20년 신영복 선생의 그리고 20년 글쎄, 쇠귀 선생의 글은 모두 짙은 사색의 향기를 어우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쓴 글의 으뜸은 역시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 실린 글 ‘비극에 대하여’를 읽고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20일쯤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이런 깨달음, 이런 인식의 지평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신영복 선생을 만난 게 1988년이다. 87년 6월항쟁의 과실을 어부지리로 챙긴 노태우가 올림픽에 명운을 걸고 있던 때였다. 3월에 4년간 근무한 여학교를 떠나 고향 인근의 남학교로 옮겼다. 전세 500만 원, 재래식 화장실에다 부엌이 깊은 집(가족들은 지금도 그 집을 ‘부엌 깊은 집’으로 부르곤 한다.)에 들었다. 그 당시 창간된 을 받아보았는데 그 지면에서 쇠귀의 글을 만났다. 서른셋, 이른바 학.. 2019.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