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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한글문화원2

[오늘] 공병우, ‘세벌식 글자판’ 통일 못 이루고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1995년 3월 7일, 한글 운동가 공병우 박사 타계1995년 오늘(3월 7일)은 유명 안과 의사이자 한글 운동가 공병우(公炳禹,1906~1995) 박사가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9세. 안과의사로 특이하게 한글 전용 운동과 한글 기계화와 전산화에 크게 이바지한 공병우는 유언도 남달랐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 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시신도 해부용으로 기증하라. 죽어서 땅 한 평을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장례 후, 유족들은 후진들의 의학 교육에 도움을 주라는 유지에 따라 그의 시신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을 위해 기증하였다.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몸을 후학들의 .. 2024. 3. 7.
세벌식 , 한글 이야기(1) 세벌식 글자판과 한글 입력 타자기를 처음 만지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먹지를 대고 공문서를 쓰고, 등사기로 주번 명령지를 밀던, 특전대대 행정서기병 시절이다. 어느 날, 중고 레밍턴 타자기 1대가 대대 인사과로 내려왔다. 비록 중고이긴 했지만, 그 작고도 선명한 인자(印字)가 선사하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한 이태 가까이 그놈을 벗하며 살았다. 이른바 ‘독수리 타법’을 벗지 못하였지만, 일정한 속도를 확보할 무렵, 나는 만기 전역했고 이내 대학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월부로 ‘크로바 타자기’를 한 대 샀다. 물경 10만 원짜리였다. 자판을 외우고 능숙하게 다섯 손가락을 자유로이 쓰게 된 것은 당연한 일. 모두 손으로 쓴 졸업논문을 낼 때, 타자로 가지런히 친 논문을 제출한 건 나뿐이었을 게다. 독재정.. 2019.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