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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지청천3

[오늘] 대한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장군 급서하다 [역사 공부 ‘오늘’]1957년 1월 15일- 대한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급서 1957년 1월 15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대한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 1888∼1957) 장군이 급서하였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다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었고,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와 함께 독립군 3대 대첩인 대전자령 전투의 지휘관이었다. 향년 68세. 지청천은 서울 출신이다. 본명은 대형(大亨), 일명 이청천(李靑天), 호는 백산(白山)이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했다. 이듬해 통감부의 압력으로 무관학교가 폐교되면서 1, 2년생 40여 명과 함께 정부 유학생으로 동경 육군중앙유년학교에 들어갔다. 유년학교는 뒤에 일본사관학.. 2024. 1. 15.
[오늘] 충칭에서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광복군 총사령부의 성립 전례(典禮)가 거행되었다. 그로써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21년 만에 임정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 선언문」을 통하여 광복군 창설의 취지를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천명하였다. 비록 타국에서 세운 임시정부였지만, 임정은 1919년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軍制)」를 제정하여, 군대를 창설한다는 원칙에 따라 군대의 편제와 조직에 관한 법규를 마련한 바 있었.. 2023. 9. 17.
육군사관학교는 왜 ‘독립전쟁 영웅의 흉상’을 ‘철거’하려 할까 ‘1948년 건국론’과 맥을 잇는 ‘단절적 역사관’의 민낯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네 분과 이회영 선생 흉상을 철거해 외부로 옮기고자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신에 육사는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처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홍범도 철거하고 ‘만주군 출신’ 백선엽 흉상 검토…육사의 ‘역사 쿠데타’] 육사의 영웅 흉상을 철거,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 부정인가 육사 내에 흉상으로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장군은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네.. 2023.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