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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제자들4

30년, 제자들과 함께 늙어가기 30년째 교유를 잇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늙어가기 지난해 2월 25일, 동료 교사들이 마련해 준 ‘퇴임 모임’에 인근에 사는 제자들 여덟 명이 함께 해 주었다. 모임을 끝내고 난 뒤에도 우리는 자리를 옮겨 얼마간 시간을 더 나누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관련 글 : 걸어온 길, 걸어갈 길] 1988년,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함께 문학동아리를 만들어 교외 시화전을 치르고, 문집을 펴내면서 인연을 맺었다. 거기서 이태를 채우지 못하고 해직되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교유를 이어오고 있다. 좀 쓸쓸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우리를 더 묶었는지도 모른다. [관련 글 :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교사의 ‘격려’와 ‘질책’ 사이] 함께한 세월, 29년 해직 5년.. 2019. 3. 28.
걸어온 길, 걸어갈 길 학교를 떠나며 ② 후배, 제자들과 함께한 퇴임 모임 후배 교사들이 마련해 준 25일의 퇴임 모임에 나는 10분쯤 지각했다. 모임 장소인 식당 2층에 올라 실내로 들어서는데 방안 가득 미리 와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네 오는 바람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그런 식의 환대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뚜렷하게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창가에 작은 펼침막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것은 한참 뒤다. ‘당당히 걸어오신 길,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라는 문구 아래 내 이름이 씌어 있었다. 잠깐 앉았다가 나는 자리를 돌면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후배 교사들이 스물 서넛, 인근에 사는 제자들이 여덟 명이 와 주었다. 따로.. 2019. 3. 24.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2) 복직 이후의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해직 5년은 내 삶에서 일종의 변곡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른바 ‘아스팔트’ 위의 교사로 쪼들리며 산 세월이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절이었다. 복직도 승리의 전망도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젊음 때문이었다. 5년 만의 복직, 다시 만난 아이들 1994년 3월에 나는 경북 북부지역의 한 시골 중학교에 복직했다. 막상 학교로 돌아왔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료가 ‘중증’이라고 표현할 만큼 내 의식과 현실은 어긋나기만 했다. 그러나 거기서 지낸 2년도 잊을 수 없다. 고비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지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서른아홉, 젊다면 젊었고 아이들은 순수했다. 첫해는 담임 없이 수업만 했고 이듬해는 학기 중간에 1.. 2019. 3. 22.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이웃이 된 제자들(1) 한 5년쯤 될까. 교직에 들어 한동안은 ‘제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어쩐지 ‘제자’라는 말을 올리는 게 민망해서였다. ‘제자’라는 말의 상대어는 당연히 ‘스승’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제자’라고 말하려면 내가 ‘스승’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통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교사들 대부분은 그런 자격지심과 무관한 일상어로 이 낱말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심히 제자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예사롭지 않은 자격지심이 멀쩡한 동료를 능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다. ‘스승과 제자, 혹은 교사와 학생’ 사이 그래도 ‘스승’을 입에 올리는 것은 서른 해를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다. 모든 교사에게 ‘스승의 날’은 언제나 부담스러워 피하고.. 2019.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