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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육사6

[순국] 이육사, 베이징의 지하 감옥에서 지다 육사,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순국 1944년 오늘 새벽 5시, 베이징(北京)의 일본총영사관 지하 감옥에서 한 조선 청년이 눈을 감았다. 그는 ‘겨울’을 봄을 예비하고 있는 ‘강철로 된 무지개’로 여겼던 사람, ‘청포도’와 ‘광야’를 노래했던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였다. 향년 40세. 1943년 4월에 베이징으로 온 육사는 충칭(重慶)과 옌안(延安)을 오가면서 국내에 무기를 반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7월에 모친과 맏형의 소상(小祥)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늦가을에 일경에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새해를 맞은 지 16일 만에 육사는 마침내 쉼 없는 투쟁의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육사,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지다 육사의 시신을 수습한 이는 항일.. 2024. 1. 16.
7월, 더 낮게 흘러서 가자 청포도의 7월에 7월이다. 1일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 조직이 된 지 8돌이 되는 날이다. 다분히 과장된 구호였지만, 전교조란 조직 명칭 앞에 ‘사천만의 꿈과 희망’이란 꾸밈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혹독한 탄압의 시기였다. 1천6백여 명의 교사들이 학교에서 쫓겨났고 이 거리의 교사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일 때마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48시간 동안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거나 닭장차에 실려 난지도 따위의 외곽지에 짐짝처럼 버려지기도 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때와 비기면 지금 전교조는 가히 ‘동네북’으로 전락해 버린 듯하다. 보수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서 표를 구해야 하는 의사(疑似) 개혁 정치인까지 그 발길질에 열심히 가담한다. ‘.. 2022. 6. 30.
‘조선의용대의 영혼’ 윤세주 열사, 타이항산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2년 6월 3일-윤세주, 타이항산 폔청 전투에서 전사 1942년 6월 3일, 조선의용대 화북(華北)지대 정치위원 석정(石正) 윤세주(尹世胄, 1901~1942)가 타이항산(太行山) 석굴에서 순국했다. 허베이(湖北)성 폔청(偏城)에서 일본군의 제팔로군 소탕 작전에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은 지 닷새 만이었다. 폔청 전투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중국 타이항산맥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운 타이항산 전투 가운데 후자좡(胡家庄) 전투·싱타이(邢台) 전투(1941)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1942년 5월 28일, 허베이성 셰현(涉縣)의 북쪽 가장자리 산시성 경계에 있는 폔청에서 시작된 이 전투는 일본군의 소탕 작전에 대항한 팔로군의 반 소탕전으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5월 29일 항일.. 2020. 6. 3.
수훈(受勳)의 자격, 또는 훈장의 ‘품격’ 누가 훈장을 받는가, 그는 ‘받을 자격’이 있는가 ‘상(賞)’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하 같음.)을 뜻하는 일반 명사다. 비슷한 뜻이지만 ‘훈장(勳章)’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이라는 뜻의 법률용어로도 쓰이는 명사다. 상이 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면 훈장이 가문의 명예로 이어지는 것은 그것이 ‘나라에서 주는 포상 가운데 으뜸가는 훈격(勳格)’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는 상’이 아니며, 서훈의 대상이 되는 ‘공적’이 자연인 사이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이바지’라는 특수성을 갖는 것이다. 논란이 된 MB의 ‘임기 말 서훈’ 따라서 훈장이 ‘.. 2020. 3. 3.
‘광야’, 목 놓아 부를 수 없는 노래 [항일의 땅과 사람, 안동 ⑤] 민족시인 이육사의 항일투쟁 아이들에게 우리 문학을 가르치면서 문학 교사들이 비켜갈 수 없는 길목이 있다. 비애와 부끄러움 없이 가르칠 수 없는 참담한 현대(근대)문학사가 그것이다. 개화기를 거쳐 근대로 진입하는 이 시기의 문학을 담당했던 일군의 시인 작가들을 고스란히 ‘친일 문인’ 명단에서 만나야 하는 까닭이다. 첫 신체시 작품인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를 쓴 육당 최남선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되는 (1917)을 썼던 춘원 이광수는 한때 이른바 ‘2인 문단 시대’를 이끌었던 신문학의 개척자였다. 초기에는 민족주의자로 활동했으나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이들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친일 문인으로 전락한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 2019. 10. 19.
‘친일문학’ 이야기 - 글머리에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갈증 중등학교에서 서른 해 가까이 문학을 가르쳐 왔지만 정작 ‘친일 문학’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늘 판박이 식의 지식 전수에 급급하다 보니 그랬지만 기실 스스로 친일 문학에 대한 이해가 얕았던 게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친일 문학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서정주의 정도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경우는 그나마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등 따위로 알려진 게 있어서 대충 주워섬기면 되었지만 막상 누가 친일문인이고 누가 아닌지를 꼽다 보면 이내 이야기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마다.. 2018.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