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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승만7

[오늘] 70년 전 우리가 치른 전쟁이 가르쳐 준 것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조선인민군이 소련에서 지원한 최신형 전차 T-34/85를 앞세우고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함으로써 ‘6.25전쟁’이 시작됐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돼 맞닥뜨린 혼란의 해방공간을 일거에 무력화하면서 한반도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현장이 되리라는 끔찍한 예고였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전쟁 앞에 허둥대기는 정부도 국민과 다르지 않았다. 개전 사흘 만에 대통령과 정부 수뇌부는 시민들에게 서울 사수를 공언해 놓고도 한강 다리를 끊고 남몰래 피난길에 올랐고 140만 명의 서울 시민은 ‘인공 치하’의 수도에 남겨졌다. 해방과 함께 온 ‘분단.. 2020. 6. 24.
[오늘] 한국전쟁 때 이양한 ‘평시 작전통제권’ 44년 만에 회수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2월 1일, 미국 보유 한국군 평시 작전통제권 공식 반환 1994년 오늘,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1992)의 합의에 따라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공식 반환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Douglas MacArthur) 국제연합군 사령관에게 위임, 이양되었던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s)’의 ‘절반’이 44년 만에 환수된 것이다. 주권국가의 작전권은 해당 국가의 군 통수권자에게 있는 것은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런데도 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 상황이 반세기가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분단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것도 ‘때론 비극이거나 희극’으로 말이.. 2019. 11. 30.
[오늘]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공포했지만… [역사 공부 ‘오늘’]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 1948년 오늘,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법률 제3호로 공포하였다. 제헌국회에서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 치하의 독립 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9월 7일)시킨 지 15일 만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친일 부역(附逆)세력에 대한 반감과 함께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 군정 하의 한국 사회에 그러한 권한과 재량은 주어지지 않았다. 미 군정은 국가 관리에 필요한 인적 자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친일파 제거에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군정에도 행정 경험을 가진 친일파를 폭.. 2019. 9. 21.
[오늘] 최초의 사법살인, 조봉암 서거 60주기 [역사 공부 ‘오늘’] 1959년 7월 3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산 처형되다 1959년 7월 31일 10시 45분,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집행장으로 ‘머리를 산뜻하게 다듬고 평소에 입고 있던 모시 바지저고리에 흰 고무신을 신은’(박태균, ) 사형수가 도착하였다. 그는 대기하고 있던 집행관과 형무소 간부들 앞으로 태연하게 걸어갔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는 무심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재심 기각 다음 날, 죽산 처형되다 집행관의 인정신문과 판결문과 재심 기각 사유 낭독 등 의례적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에게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가슴에 붙은 번호는 2310, 본적은 경기도 인천시, 현주소는 서울시 충현동, 나이 61세의 이 사형수가 바로 한국 정치사에서 1세대 진보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죽산(竹山) .. 2019. 7. 30.
[오늘] 한강 다리 폭파 - 전날 이미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을 탈출했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6월 28일, 새벽 한강대교 폭파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28분, 국군은 한강대교(인도교)를 폭파하였다. 사흘 전인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된 한국전쟁 70시간 30여 분 만이었다. 폭파 장면을 목격한 미 군사고문단은 50여 대의 차량이 파괴되고, 500~800명의 인명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도 서울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이 다리가 끊어지면서 무고한 인명의 희생에 이어 서울시민 100만 명의 발이 묶였다. 병력과 물자 수송이 막히면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다가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지 못한 국군 6개 사단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중화기와 차량 등 다량의 군수품을 적에게 내줘야 했다. 전쟁 발발 뒤 정부의 공식 발표는 6차례에 걸쳐 있었다. 6월.. 2019. 6. 27.
[오늘]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의열투쟁’의 첫 장을 열다 [역사 공부 ‘오늘’] 1908년 3월 23일, 장인환·전명운 의사 스티븐스를 처단하다 1908년 3월 23일은 월요일이었다. 오전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 항 페리호 부두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일시 귀국 중이던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총을 맞고 쓰러졌고, 현장에서 두 명의 한국 청년 전명운(25)·장인환(33)이 체포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장인환·전명운 의거 후송된 스티븐스는 이틀 후 총탄 제거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고 두 사람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전명운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장인환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되어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19년 특사로 풀려났다. 이 사건이 바로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2019. 3. 21.
우리 지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까닭 마침 때가 되었다. 평소에는 입에 올리지 않는 ‘독립’이니 ‘운동’이니 하는 낱말이 줄줄이 소환되고 관련 논의의 밑돌을 까는 때 말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 망명지에 ‘가(假)정부’ 하나 세운 거지만 어쨌든 1910, 경술년에 나라가 망한 뒤 처음으로 ‘왕정’(대한제국)에서 ‘공화정’(대한민국)을 선포한 해니, 그 100돌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 지폐엔 독립운동가가 없다 온 나라가 이 100돌을 기념하는 행사로 분주하다. 어저께는 2·8독립선언 기념식이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렸고, 20일 뒤면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4월 11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 기다리고 있다. 언론매체에 소환된 기사 가운데 “.. 2019.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