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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안중근5

[순국]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뤼순서 순국 청년 안중근(1879~1910), 뤼순(旅順)에서 지다 1910년 오늘(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날이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1909년 10월 26일)한 지 꼭 다섯 달 만이요, 일제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1910년 2월 14일)받은 지 한 달 열흘만이었다. 가톨릭교회, ‘살인자’의 종부성사 거부 이 자료에 따르면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안중근은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안중근은 당시 천주교 조선대목구(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뮈텔(Mutel, 1854~1933) 주교에게 전보를 보내 자신에게 사제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자신의 사형 집행일로 성(聖) 금요일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2008년 3월, 국.. 2024. 3. 25.
[오늘]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의열투쟁’의 첫 장을 열다 [역사 공부 ‘오늘’] 1908년 3월 23일, 장인환·전명운 의사 스티븐스를 처단하다 1908년 3월 23일은 월요일이었다. 오전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 항 페리호 부두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일시 귀국 중이던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총을 맞고 쓰러졌고, 현장에서 두 명의 한국 청년 전명운(25)·장인환(33)이 체포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총성, 장인환·전명운 의거 후송된 스티븐스는 이틀 후 총탄 제거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고 두 사람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전명운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장인환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되어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19년 특사로 풀려났다. 이 사건이 바로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2024. 3. 22.
[순국] ‘경술국적 이완용 처단 미수’ 이재명 의사 순국하다 1910년 9월 13일,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이재명(李在明, 1887~1910) 의사가 경성감옥(뒷날의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순국했다. 1년 전(1909) 12월, 그는 이완용을 찔렀지만 실패해 체포되었고 2010년 5월 일제의 법정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칼끝에서 살아남은 이완용은 8월 22일 데라우치 통감 관저에서 매국 문서(한일합병조약안)에 서명했고 합병은 일주일 후 발효되었다. 이재명은 평안북도 선천 사람이다. 어릴 때 평양으로 이주하여 개신교계 사립학교인 일신학교를 졸업했다. 1904년 미국노동이민회사의 이민 모집에 응하여 하와이로 가 농부로 일하다가 1906년 3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한인의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재명, ‘국적 이완용.. 2023. 9. 13.
독립운동가들의 최후, 글로만 봐도 눈물이 난다 [서평] 김태빈의 항일답사 프로젝트 108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이듬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내준 하얀 수의를 ‘살아서’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안 의사의 거부로 변호에 실패한 일본인 변호사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는 말년에 그를 회고하는 글 를 썼다. 그 글은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로 시작된다. 연암 박지원의 의 여정을 따라가는 (레드우드, 2016)에 이어 김태빈이 펴낸 ‘항일답사 프로젝트’의 제목은 다. 이 명명은 아마 의연하게 죽어간 안 의사에 대한 국적을 넘는 ‘외경과 공감’의 표현일 터이다.(.. 2019. 11. 10.
우리 지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까닭 왜 우리 지폐 도안 인물에 ‘독립운동가’가 없을까 마침 때가 되었다. 평소에는 입에 올리지 않는 ‘독립’이니 ‘운동’이니 하는 낱말이 줄줄이 소환되고 관련 논의의 밑돌을 까는 때 말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 망명지에 ‘가(假)정부’ 하나 세운 거지만 어쨌든 1910, 경술년에 나라가 망한 뒤 처음으로 ‘왕정’(대한제국)에서 ‘공화정’(대한민국)을 선포한 해니, 그 100돌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우리 지폐엔 독립운동가가 없다 온 나라가 이 100돌을 기념하는 행사로 분주하다. 어저께는 2·8독립선언 기념식이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렸고, 20일 뒤면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4월 11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 2019.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