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

초가을, 산, 편지 초가을, 북봉산에서 초가을, 산 아직 ‘완연하다’고 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미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새삼 실존적으로 환기해 준다. 어쩔 수 없이 가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기 삶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대기엔 아직은 마뜩잖은 시간이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한 반면 한낮엔 아직 볕이 따갑다. 그러나 그것도 ‘과일들의 완성’과 ‘독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상 릴케 ‘가을날’)을 위한 시간일 뿐이다. 자리에 들면서 창문을 닫고, 이불을 여며 덮으며 몸이 먼저 맞이한 계절 앞에 한동안 망연해지기도 한다. 늦은 우기에 들쑥날쑥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공기가 찬 새벽을 피해 아침 8시 어름에 집을 나선다. 한여름처럼 땀으로 온몸을 적실 일은 없지만, 이마에 흐.. 2021. 9. 13.
오월의 산, 숲은 가멸다 어느덧 오월도 막바지입니다. 오늘은 대구 지방의 온도가 섭씨 35도에 이를 거라니 계절은 좀 이르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숲은 더 우거졌고 산색도 더 짙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얼마간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도 숙지는 듯합니다.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 풍매화(風媒花)는 이제 꽃가루를 날리고 받는 일은 끝낸 것일까요. 수분(受粉)에서 수정에 이르는 6개월 뒤에 비로소 암꽃은 솔방울을 달게 되겠지요. [관련 글 :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올에 유난히 짙은 향기로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던 아까시나무꽃도 이제 거의 졌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아까시나무 꽃잎은 산길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밟히고 있습니다. 싸리꽃도 .. 2020.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