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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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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殉國)] 임정 주석 이동녕·민족해방운동가 김마리아 떠나다 [순국(殉國)] 1940년 3월 13일, 이동녕 치장에서 급성폐렴으로 스러지다 1940년 3월 13일, 임시정부 17대 주석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 1869~1940)이 쓰촨성(泗川城) 치장(綦江)에서 급성폐렴으로 순국했다. 1910년 서간도로 망명한 지 서른 해, 임시정부 수립 이후 풍찬노숙한 세월 스물한 해, 그는 생애 네 번째로 내각 수반을 맡아 분투 중이었다. 이동녕은 구한말 독립협회에 가담해 구국운동을 전개한 이래 임종의 순간까지 독립 전선에 있었다. 그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의 초대 교장이었고 이상설, 이동휘 등과 함께 대한광복군 정부(1914)의 주역이었다. ‘무오독립선언’(1918)에 참여했고, 1919년 상하이 임정 수립 때는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이었다. 11대(.. 2024. 3. 13.
[오늘] 1915년 연해주 13도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15년 1월 29일, 연해주 13도 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 1915년 1월 29일, 중국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국내외 의병의 단일 지휘계통을 지향한 연해주 13도의군(十三道義軍) 도총재를 지냈던 의병장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895년 을미의병의 최고 지도자로 호좌(湖左) 의병진(陣)을 이끈 지 꼭 20년 만에 그는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향년 74세. 의암 유인석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의 원류인 화서(華西)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화서학파의 정통 도맥(道脈)을 이은 위정척사론자였다. 그는 화서의 문하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을 익혔는데 만동묘 철.. 2024.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