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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법외노조7

24년 뒤에 출생신고서 회수… ‘꿈’이 선명해졌다 [나는 전교조다] ‘법외노조’ 되더라도 참교육 꿈은 변하지 않아 지난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 노조’ 통보를 강행했습니다.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의 권고도,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국내외 여론도 간단히 묵살되었지요. 이로써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된 지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아시다시피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는 데 인용된 것은 ‘법’ 논리였지요. 노동부 장관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단체에 더 이상 법에 의한 보호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교육부 장관은 “노동자이기에 앞서 선생님이기 때문에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행법 준수를 촉구했다”라며 ‘교.. 2020. 11. 2.
‘교원 단결권’ 되찾는 데 7년, 그건 너무 길었다 전교조 합법 지위 회복에 대한 퇴직 원년 조합원의 감회 오늘 새벽, 잠에서 깨어나면서 손을 뻗어 머리맡의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5분. 새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내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문득 며칠 전에 확인한 1989년 해직 동료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상식의 회복’ 앞에 모두 담담하다 대화방에선 뇌를 수술하고 정양 중인 내 띠동갑 일흔일곱 살 김 형님의 근황에 쾌유를 비는 후배들과 수도권으로 옮겨가 근무하다 최근 공모 교장으로 초빙된 동료 여교사에 대한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지난 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하다’는 대법원판결 소식은 누군가의 ‘노조 승리!’.. 2020. 9. 8.
콩국수의 추억과 미각 콩국수의 계절이다. 콩국수를 한번 해 먹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어제 저녁 식탁에 아내는 콩국수를 내놨다. 하얀 냉면 그릇에 담긴 콩국수의 면은 지금껏 우리 집에서 써 왔던 소면(小麵)이 아니라 적당한 굵기의 중면(中麵)이다.(여기서 쓰는 소면, 중면은 에 나오지 않는다. 사전에 실려 있는 ‘소면’은 고기붙이를 넣지 않았다는 뜻의 素麪뿐이다.) 콩국수의 계절 콩국수의 면이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맛이 바뀌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역시 콩국수에는 굵은 면이 어울린다. 노란빛이 맛깔스레 뵈는 국수가 콩 국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은 보기에도 역시 좋다. 아내는 왜 진작 이놈을 쓰지 않았을까. 아내는 삶은 콩과 함께 참깨와 땅콩을 갈아 넣었다. 음식점 콩국수에 비기면 훨씬 담백한 맛이다. 콩국수 전문점에서는 우유를 넣.. 2020. 6. 24.
그가 간 지 30년……, 팩스 한 장으로 되돌려진 ‘법외노조’ 고 배주영 선생 30주기를 추모하며 지난 19일은 배주영(1963~1990) 선생의 30주기였다. 1990년 2월 19일 아침, 경북 청송의 자취방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했을 때 그는 스물일곱의 처녀였다. 그리고 30년이니 그가 산 삶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19일 오후 2시에 안동시 안기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모인 초로의 교사들을 회한에 잠기게 한 것도 그 세월이다. 배주영 선생 떠난 지 30년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법외노조’로 출범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단지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해 8월까지 교사 1600여 명을 학교에서 쫓아냈다. 거리로 쫓겨난 교사들 중에는 조직의 상근자로 남은 이들이 많았다. 간부와 주요 활동가가 모두 교단에서 배제되었어도 전국 .. 2020. 2. 22.
"전교조에서 사람의 길, 교사의 길을 배웠다" 창립 30돌, 퇴직 전교조 조합원 교사의 회고 지난 25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30주년 전국교사대회'에 다녀왔다. 이 대회의 구호는 '법외노조 취소! 노동기본권 쟁취'였다. 웬 '법외노조'냐고? 알 만한 사람은 구호만 살펴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지금 처한 상황을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합법노조에서 법외노조로 되돌려진 전교조 30돌 그렇다. 1989년에 설립된 전교조는 10년 만인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합법노조가 됐다. 1천6백여 명의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투옥되는 등의 희생을 치르고서였다. 그러나 합법노조로 누린 시간은 길지 않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열 명도 되지 않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 2019. 5. 30.
31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학교를 떠나며 ① 오는 2월 마지막 날짜로 저는 지난 31년의 교단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어떤 형식의 끝이든 감회가 없을 수 없지요. 지난해 세밑에 쓴 기사(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에 저는 떠나기 전에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머물 날이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저는 여전히 궁싯거리고만 있습니다. 정리하고 마무리하자고 자신에게 되뇌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지요.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마무리해야 하는지가 다만 어지러울 뿐입니다. 31년(1984.3.1.~2016.2.28.)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셈법입니다. 1989년 9월부터 1994년 2월까지의 공백, 4년 반은 기실 우리에겐 ‘잃어버린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2019. 2. 25.
나의 전교조 25년, 그 옹이와 매듭 지난 15일, 스승의 날 저녁에 나는 친구인 장(張) 선생과 함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갔다.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우릴 초대했던 것이다. 우리는 물론 그를 모른다. 친구는 그래도 한때 거기 신자였지만 나는 가톨릭과는 아무 인연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거기 간 것은 오래전의 어떤 ‘인연’ 때문이었다. 25년 전 - 아, 그새 그렇게 세월이 흘러 버렸다. 1989년 8월 23일에 나는 친구와 함께 그 수도원 산하의 학교 법인에서 해임되었다. 그해 5월 28일, 온 세상을 달구며 돛을 올린 ‘교원노조’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교원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초중등, 공사립 교사들은 무려 1천6백여 명이었다. 1989년 우리를 해임한 재단의 초대를 받다 그때, 우리를 해임한 이가 당시의.. 2019.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