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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박근혜10

2024, 총독의 소리 - ‘패전으로 형성된 질서 부인’의 한길로 최인훈 연작 소설 ‘총독의 소리’ 오마쥬 (2) 는 작가 최인훈의 연작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가상한 신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패전 후 지하로 들어간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유령 방송을 통해 반도의 재점령을 노리고 있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상의 인물인 총독의 모습은 일련의 연설 속에 감춰져 있을 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의 행위가 없는 담화 상황만으로 짜인, 서사적 규범을 뛰어넘는 형태적 파격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인식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은 작가의 작품 형식과 그 일부 내용을 빌려 2008년의 한국, 그리고 한일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글 가운데 원작을 인용한 부분의 글자는 붉은 색깔로 표시하였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조선총독부 지하부가 보내드리는 유령 .. 2024. 3. 17.
[오늘] 한국전쟁 때 이양한 ‘평시 작전통제권’ 44년 만에 회수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2월 1일, 미국 보유 한국군 평시 작전통제권 공식 반환 1994년 오늘,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1992)의 합의에 따라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공식 반환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Douglas MacArthur) 국제연합군 사령관에게 위임, 이양되었던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s)’의 ‘절반’이 44년 만에 환수된 것이다. 주권국가의 작전권은 해당 국가의 군 통수권자에게 있는 것은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런데도 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 상황이 반세기가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분단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것도 ‘때론 비극이거나 희극’으로 말이.. 2023. 11. 30.
헌법기관 이정현의 ‘의리’와 배신 국회의원 이정현의 ‘의리’ 혹은 견마지로 한국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유난히 ‘의리(義理)’를 밝힌다. 사전적 의미로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다음 한국어사전)이니 그걸 밝히는 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의리란 그리 만만치 않다. 의리는 우리나라의 윤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을 규정하는 규범으로 기능하고 있다. ‘의리를 잘 지키는가’의 여부가 사람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지표로 쓰이는 건 그래서이다. 북한에서도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홍모(鴻毛) 같다.”라는 속담이 쓰인다고 한다. 이는 의리는 산같이 무겁고 죽음은 기러기의 털과 같이 가볍다는 뜻이니 의리를 위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2021. 12. 12.
그, 혹은 그들의 ‘공감(共感) 능력’ 박근혜와 그 정부의 공감능력 박근혜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황당한 장면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그의 태도다. 나중에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지만 그게 온전히 연민과 슬픔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다. 그것은 결코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비극, 305명이 눈을 번연히 뜬 채 심해로 가라앉아야 했던 기막힌 현실을 성찰한 이의 모습이 아니다. 고교생 250명을 포함한 305명의 죽음을 책임져야 했던 국정의 최고 책임자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남의 고통을 내 것으로 이해하는 힘, ‘공감’ 능력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는가. 그것은 상대의 불행과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던 .. 2020. 12. 7.
가난도 가난 나름, ‘가난’을 다시 생각한다 ‘장식’, 혹은 ‘성공의 배경’으로의 ‘가난’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60년대를 전후해서 ‘인구에 회자’한 얘기다. 다분히 비장한 기운마저 감도는 이 말이 마치 경구처럼 쓰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6·70년대라는 시대의 미덕이었다. 그것이 미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극복될 수 있는 가난’, 곧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에 힘입은 것이다. 가난은 다만 ‘불편한 것’? 깡촌의 무지렁이 농민의 아들이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나와 각종 ‘고시’에 ‘패스’하는 성공담은 그 시대의 꿈이고 전설이었다. 그 시대는 달리 말하자면 ‘입지전’ 주인공들의 전성시대였다. ‘검사와 여선생’ 따위의 신파가 연출될 수 있었던 것도 신분 상승의 신화가 가능했던 시대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 2020. 10. 31.
‘판문점선언’과 구미의 이발소 풍경 ‘판문점선언’과 티케이 지역의 슬픈 ‘확증 편향’ 남북정상회담 뒤, 구미의 이발소 풍경 대체로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나 단체와 교유하다 보니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날것 그대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드물 수밖에 없다. 주변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야 적지 않지만, 이들은 굳이 견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걸 꺼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감 없이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견해를 들으려면 상대가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람들이 여론을 듣기 위해 시장을 찾거나 택시를 타고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까닭이 달리 있겠는가 말이다.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판문점선언이 발표될 무렵에 나는 시내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느라 듣지 못했던 선언.. 2020. 4. 29.
이발소와 종편 채널, 그리고 ‘박근혜’ 동네 이발소를 피해 먼 이발소를 이용하는 까닭 가까운 미용실을 이용하다가 아니다 싶어서 인근의 이발소를 다니게 되었을 때다. 60대 후반의 이발사는 과묵한 데다 이발 솜씨도 좋아서 한 1년쯤 거기서 머리를 깎았다. 어느 날부터 이발소에 주인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은 늘 종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관련 기사 : ‘이발소’로의 귀환] 종편과 이발소 머리를 깎는 시간이야 30여 분에 불과하지만, 앵커인지 선동꾼인지 모를 자칭 언론인들이 진행하는 억지와 왜곡, 고성과 비약으로 일관하는 뉴스를 듣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 어느 날 나는 그 가게에 발을 끊었다. 50대 초반의 얌전한 이발사가 드라마나 틀어놓는 학교 앞 이발소로 옮긴 것이다. 가끔 종편이 박근혜 정권을 떠받치는.. 2020. 4. 16.
살구꽃, 혹은 성찰하는 공민의 봄 3. 남은 것은 이제 ‘성찰하는 공민’입니다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 qq9447.tistory.com 오늘 아침에야 3월 달력을 떼어냈습니다. 연금공단에서 보내준 달력입니다. 삼월분을 찢어내자 드러나는, 한글로 쓴 ‘사월’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사월이 무거운 이유는 여럿입니다. 그것은 멀리는 이제 기억에서도 까마득해진 사월혁명, 그때 스러져 간 젊은이들의 피를 떠올리는 시간이고, 가까이는 2014년 4월 어느 날을 아픔과 뉘우침으로 기억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 2020. 4. 2.
박정희 ‘신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민의 탄생’ 나이 든 지지자들조차 탄식… ‘묻지 마 지지’ 위험성 잘 보여줘 대통령의 유고(有故)다. 마침내 대통령 박근혜는 ‘전임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지난 10일 11시 21분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 사건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주문을 선고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네 어절로 된 문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어 온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건을 간단히 매듭지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재에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1일 만이었다. 헌재 선고 이후의 변화를 다투어 전하는 뉴스 가운데는 ‘군부대 대통령 사진 철거’ 소식도 끼어 있다. 국방부에서 .. 2020. 3. 16.
어떤 ‘측은지심(惻隱之心)’ 전직 대통령의 딸에게 보내는 민초들의 ‘연민’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의 하나로 인(仁)의 본질이라고 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불쌍히 여겨서 언짢아하는 마음’이다. 물에 빠진 아이의 예로 제시한 측은지심은 이성적 판단 이전에 인간이 본능으로 가진 어진 마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상대를 불쌍하게 여길 때 말하곤 하는 ‘안됐다’라고 하는 감정과 상통한다. 따라서 ‘측은하다’거나 ‘안됐다’고 하는 감정은 타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일종의 공감인 것이다. 그 공감이 상대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참 안됐고 측은하다’ 뜬금없이 ‘측은’을 이야기하는 것은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아내가 만난 60대 이웃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통령을 보고 ‘측.. 2020.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