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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문태준4

가을, 코스모스, 들판 지난주에 안동댐 부근에 코스모스밭이 있다 해 찾아갔다가 허탕을 쳤다. 어제 오전에 잠깐 교외로 나갔다. 봉정사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코스모스가 성기게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심한 사이 어느새 가을이 성큼 깊었나 보다. 들판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줌과 망원, 단렌즈를 바꿔 가면서 코스모스를 사진기에 담았다. 사진을 찍게 된 지도 꽤 되었건만 나는 여전히 조리개를 많이 열어서 배경을 뭉개는 사진을 선호하는 편이다. 애당초 촬영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서겠지만 사진에 관한 생각은 여전히 초보의 그것을 벗지 못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접사로 찍으니 조리개를 죄어도 배경이 흐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진은 ‘뻥’이다. 인간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렌즈 따위는 없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풍경.. 2019. 9. 25.
‘한계령을 위한 연가’, ‘고립’에 대한 뜨거운 욕망 문정희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 지난해 7월에 시집 두 권을 샀다. 2007년 6월에 고정희 유고시집 를 구매했으니 꼭 1년 만이다. 명색이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내가 이러하니 이 땅 시인들의 외로움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두 권 다 개인 시집이 아니라 문태준 시인이 고르고 해설을 붙여 엮은 시집이다. 근년에 ‘뜨고 있는’ 시인은 시를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던 걸까. 문 시인의 시는 ‘가재미’밖에 읽지 않았으면서 그가 엮은 시집을 선뜻 산 것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한 반년쯤 묵혀 두었다. 책 속표지에 휘갈겨 쓴 구입날짜(20080725)와 서명이 민망하다. 비좁은 서가 위에 위태하게 얹힌 예의 책을 꺼내 무심하게 넘겨보기 시작한 게 오늘이다. 읽어내려가.. 2019. 4. 23.
2009년 3월, 의성 산수유 마을 2009년 3월,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花田里) 숲실마을에서 베풀어지는 산수유 축제는 어제가 절정이었나 보다. 아주 가볍게 다녀오리라고 아내와 함께 나선 길이었는데 어럽쇼, 화전리 입구도 못 가서 차가 막혀 버렸다. 정체로 막힌 게 아니라, 축제 관계자와 교통경찰에게 막힌 것이다. [관련 기사 : 순박한 맨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 화전리 앞길은 일방통행으로 바뀌었고, 따라서 산수유꽃을 보러 온 상춘객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천변이나 인근 초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화전리까지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해마다 구경하는 산.. 2019. 3. 22.
책 읽기, 그 도로(徒勞)의 여정 책 읽기의 압박, 그리고 결기를 버리고 나니 … 책 읽기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 지 몇 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내가 내 안에 더는 어떤 열정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조직 활동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 내 삶을 마치 말라 바스러진 나뭇잎 같은 것으로 느끼기도 했다. 그건 슬픔도 회한도 아니었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오랜 절망적 성찰 끝에 스스로 깨친 자기응시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 무렵에 쓴 어떤 편지에서 나는 그렇게 썼다. ……시나브로 나는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는 게 어렵지 않을 만큼만 노회해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나 사고를 아무 통증 없이(!) 여러 갈래로 찢고 자를 수 있으며, 그 시작과 끝을 희미한 미소로, 어떠한 마음의 동요도 없이 바라볼 수도.. 2019.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