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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7

[오늘] 임정 지킴이 성재 이시영 선생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53년 4월 17일, 부산 동래에서 별세 1953년 4월 17일, 이태 전인 1951년, 이승만의 전횡에 항의하며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은퇴한 성재(省齋) 이시영(1868~1953) 선생이 부산 동래의 임시 거처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그는 “완전 통일의 그 날을 못 보고 눈감으니 통한스럽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시영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인 이유승의 6형제 가운데 다섯째 아들이다. 8대에 걸쳐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였던 이 집안 6형제는 나라가 망하자 3만 섬의 재산(현재 시가로 6백억 원)을 처분한 뒤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6형제의 ‘노블레스 .. 2024. 4. 17.
[오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기업인 유일한,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71년 3월 11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별세 1971년 3월 11일, ‘버들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柳一韓, 1895~1971)이 온 곳으로 돌아갔다. 향년 76세.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그는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민족 기업가였고 미 육군 전략처(OSS)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또 기업 이익을 사회 환원에 환원하고자 유한공고와 유한전문대학을 세운 교육가였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던 사회사업가였다. 자수성가한 평양의 재봉틀 판매상이었던 그의 부친은 독실한 개신교도로 미국 감리교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말을 듣고 1904년, 9살짜리 큰아들 유일.. 2024. 3. 11.
[오늘] 우당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2년 11월 17일 –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 1932년 11월 17일, 예순여섯의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이 중국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 36호 감방에서 눈을 감았다. 11월 5일, 상하이에서 영국 선적의 남창호(南昌號)로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된 지 12일 만이었다. 다롄경찰서에서 열흘 넘게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그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고 본적지 조회조차 거부했다. 그의 유해를 모시러 간 딸 규숙에 따르면 그의 안면을 확인하니 ‘선혈이 낭자하였고 타파오(大袍, 중국 의복)에도 선혈이 많이 묻어 있었다’. 우당이 상하이를 떠나 다롄으로 향한 것은 만주의 연락 근거지 확보와 지하공작 망 조직, 주만(駐滿) 일본군 .. 2023. 11. 17.
구례 운조루(雲鳥樓), 혹은 열린 쌀독, ‘타인능해’의 집 [지리산자락 지각 답사기] ① 구례 운조루(雲鳥樓) 고택(2019.10.30.) *PC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지리산자락으로 아내와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온 게 2019년 10월 말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출발하여 11월 1일에 돌아오는 짧은 여정이었으나, 우리는 꽤 여러 곳을 돌았다. 연곡사와 피아골 단풍을 구경했고, 하동 최참판댁과 박경리 문학을 들렀었다. 섬진강을 따라 구례-하동길을 지났고, 이튿날에는 아내를 독려해가며 처음으로 지리산 노고단에도 올랐었다. 늘 그렇듯 나름대로 빼먹지 않고 명승과 고적을 돌았는데 정작 그걸 전혀 갈무리하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는 그렇고 그런 차례를 지겹게 여긴 탓이었을까. 3년 만에 짧게나마 그.. 2022. 7. 20.
‘고통 분담’? 필요한 것은 ‘희생의 교대’다 대통령 신년 연설에서 요구한 ‘고통 분담’ 대신 ‘희생의 교대’ 대통령 신년 연설의 화두는 ‘고통 분담’ 새해 신년 연설(1월 2일 10시)에서 대통령이 강조할 화두는 ‘고통 분담’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경제 위기 속에서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것인지, 이를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국민적 단합과 의지, 각 경제주체의 고통 분담을 호소”하리라고 한다. ‘고통 분담’은 나라가 어려운 시기마다 정치 지도자에 의해 강조되어온 익숙한 명제다. 나는 경제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의 이해밖에 갖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 뜻을 새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라 안팎에 몰아치고 있는 경제 위기에 따르는 ‘고통을 나누어서 지는’ 주체는 물론 정부와 국민, 자본과 노동자, 혹은 부자와 빈자일 터이다. 나라의 .. 2020. 12. 29.
‘거꾸로 가는’ 구미… 독립 운동가 동상은 왜 창고에 방치됐나 제자리걸음인 ‘왕산 선양 사업’… 장세용 시장, 독립 운동가 조명에 적극 나서야 지난 4일,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구미지회(지회장 전병택)는 "구미시는 몰역사적인 물빛공원 사업 변경안을 철회하고 원안대로 사업을 시행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임 남유진 시장 때 시작된 국가산업 4단지 물빛공원에 왕산(旺山) 허위(1855~1908) 선생을 기리기 위한 광장과 누각을 조성하고 왕산 가문의 독립운동가 14분의 동상을 설치하는 사업의 핵심 내용이 바뀐 데 대한 강력한 항의였다(*한말의 대표적 의병장 허위는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으로, 허위 가문은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했다. -출처 : 디지털구미문화대전). 왕산광장과 왕산루가 왜 ‘산동광장’과 ‘산동루’로 바뀌는가 물빛공원은.. 2019. 9. 9.
임청각 - 석주 일가의 사위·며느리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석주 이상룡 일가의 사위와 며느리 오늘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안동의 임청각(臨淸閣)과 석주(石州) 이상룡 선생 일가를 언급하면서 임청각에 사람들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임청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로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다. 아흔아홉 칸 대저택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모습 그대로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 2019.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