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하얼빈>, 격동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게 한 마지막 장면

낮달2018 2024. 12. 30. 12:08

[리뷰] 영화 <하얼빈>이 선사하는 격동과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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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얼빈의 포스터.

지난 금요일에 씨지브이(CGV)에서 영화 <하얼빈>을 보았다. 10시 20분 첫 상영(조조), 경로 할인으로 둘이 14,000원이면 거의 50% 할인된 관람료다. 가끔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영화관으로 발걸음하는 게 쉽지 않다. 영화관을 찾는 것도 나들이고, 그걸 결정하고 움직이는 게 나이 들수록 만만치 않아서다.

 

다시 ‘안중근’을 쓰면서

 

<하얼빈> 제작 소식을 듣고서 개봉하면 꼭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요즘 책 한 권으로 묶으려고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에 살 때부터, 블로그에 독립운동가들 이야기를  쓴 게 거의 백여 편에 가깝다. 대체로 짤막한 약전(略傳)의 형식으로 썼는데, 그들의 삶과 투쟁을 복기하면서 나는 적지 아니하게 감동하곤 했다.

 

이번에 새롭게 책을 내기로 하면서 기왕에 쓴 글을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참고하여 다시 쓰게 됐는데, 깨달은 바가 적지 않다. 이르면 거의 1세기 이전의 역사를 재구성한 이야기에는 ‘○○를 저격해 처단했다’, ‘○○에 폭탄을 던졌다’,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라는 건조한 형식을 넘기 어려웠다. 

▲ 영화 하얼빈의 주역들. 왼쪽부터 안중근(현빈)과 우덕순(박정민), 나머지 조우진과 전여빈은 가상의 인물이다.

거기엔 이른바 ‘디테일’이 없다. 그런데, 학술논문을 비롯하여 여러 자료를 다시 살펴보면 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독립투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결단, 압박감과 두려움, 불안과 초조 따위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구체적인 사실이 서술되는 자료가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해 주었는데, 몇 번이나 그 상황을 떠올리며 치를 떨고, 분노와 안타까움 때문에 마음을 추스르지 못할 때가 적지 않았었다.

 

그들의 투쟁과 삶, 디테일로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

 

아, 이들이 겪은 시간이 그런 거였구나, 하는 깨우침에 부끄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나는 단지 몇 가지 건조한 사실만으로 그들의 삶과 투쟁을 일회적으로 그리고 소비하는 데 그쳤을 뿐이지 않았는가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과 투쟁을 톺아볼 때는 언제나 건조하게 기술되는 행간에 감추어진 진실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영화 <하얼빈>은 언제나 영웅적으로 그려졌던 안중근 의사의 독립전쟁, 그 투쟁을 관통하는 인간 안중근의 고뇌와 아픔을 담았다는 점에서 그 진실의 일단을 되새기게 해 줄 수 있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한 안중근 의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영화는 단순히 사실의 복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인간의 내면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 줌으로써, 우리는 영웅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안중근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관련 글 :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뤼순서 순국]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다 일정한 허구를 덧붙여 박진감 있고 극적인 형식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주역으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가상 인물이라는 점이나, 의거와 관련한 일화들도 굳이 허구를 가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중근 의거는 충분히 감동적인 사건이다.

▲ 영화는 압도적 배경과 장면으로 무겁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영화는 압도적인 배경의 인상과 함께, 신파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게 영화적 감동을 연출해 낸다. 영화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는 안중근의 모습은 그것 자체로 그의 삶에 주어진 짐의 무거움과 그의 파란 많은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거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격렬한 감동

 

나는 최소한 영화가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선하하는 감동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려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서사의 진행을 따라가면서도 나는 실제와 영화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줄곧 생각하고, 그게 어떤 의도에서 덧붙인 변형인지를 분간하려 애썼다. 말하자면 나는 매우 냉정한 태도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마지막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 이토 저격 장면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조감(鳥瞰)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 조감하는 평면적 장면 위로 안중근의 외침 “꼬레아 우라”가 오랫동안 이어지는데 나는 순간, 격동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혼자였다면, 고함을 치면서 오열하고 싶은 충동으로 나는 거친 숨결을 가다듬어야 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형식의 격렬하고 생생한 감동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하얼빈>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게 민족적 동질성에서 온 것이든,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각성에서 온 것이든, 우리는 그런 감동과 진실의 울림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언 두만강을 건너며 울려 퍼지는 안중근의 목소리 역시 묘한 감동과 여운으로 되새겨진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2024. 12. 30.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