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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23

캠프 캐럴에 묻힌 ‘고엽제’, 혹은 주둔 50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소재 미 주둔군 캠프 캐럴과 ‘고엽제’ 인터넷에서 맹독성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가 대구 인근 미군기지 안에 대량으로 파묻혀 있다는 표제를 읽은 것은 오늘 정오께다. ‘대구 인근 미군기지’라면 더 볼 게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기사는 그 기지가 칠곡군 왜관읍에 소재한 ‘캠프 캐럴’이라고 전하고 있다. 1978년 캠프 캐럴에 묻힌 ‘에이전트 오렌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왜관읍은 칠곡군청 소재지다. 조선 시대 일본인이 통상을 위해 머물던 집단 거주지였던 보통명사 ‘왜관(倭館)’이 고유명사로 남은 고장이다. 아시아 최대 군수 보급기지라는 캠프 캐럴(Camp Carrol)이 왜관에 자리 잡은 것은 1959년이다. 군은 아니지만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 2020. 5. 24.
‘일베’와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과 일베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진작부터 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가 가진 위험성과 해악이 우려되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5·18 광주항쟁 33돌을 즈음하여 수구 우익 매체들의 도발적 역사 왜곡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일베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증오 범죄’의 해악은 심상치 않다는 게 분명해졌다. 나는 어저께 잠깐 일베에 접속한 것을 빼고 한 번도 이 극우 사이트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보도를 일별하는 수준에서 나는 일찌감치 일베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잘라버렸다. 매체라기보다는 비열하게 편향된 관점에 기초한 천박하고 지질한 배설적 언설로 점철된 이 쓰레기 사이트에 관심을 가질 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 달 전쯤이다. 수업 중에 3학년 아이들이 .. 2020. 5. 23.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송홧가루와 박목월 시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이야기 박목월의 시 「윤사월」을 배운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첫 국어 수업에서다. 1972년이었고, 국어과 담당 교사는 도광의 시인(관련 글 : 옛 스승 도광의 시인과 제자들)이셨다. 제2차 교육과정 시기였는데 그 시는 국판의 조그만 교과서 맨 앞쪽에 ‘권두시’ 형태로 실려 있었다. 「윤사월」을 배우던 시절 몸소 시를 쓰시는 분이시라 과연 선생의 강의는 남달랐다. 그 시 한 편을 배우는데 한 시간은 너끈히 걸렸으리라. 선생께선 대단한 열정으로 시의 느낌과 의미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시려 했던 것 같은데, 정작 그때 배운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내게 ‘송홧가루’는 낯설었다. 글쎄, 어릴 적부터 지게를 지고 땔나무를 해야 했.. 2020. 5. 23.
아내 생일에 생일에 아내는 손수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렸다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손수 끓인 미역국에다 엊저녁에 해 둔 밥으로 식탁을 차렸다. 그 식탁에 앉기가 좀 민망했다. 딸애는 뒤늦은 공부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고, 아들 녀석은 서울에 있다. 그렇다고 아내의 생일이라고 내가 안 하던 밥을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일날인데……, 미역국도 손수 끓여서 먹어야 하는구먼, 하고 내가 겸연쩍게 말하자, 아내는 심상하게 밥도 엊저녁 밥인데 뭘, 하고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어쨌든, 당신 같은 사람을 내게 보내주어서 나는 참 행복했어. 당신이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예전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준의 아첨이지만,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 2020. 5. 22.
‘잠’을 생각한다 초저녁잠, 노화의 증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게 노화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인지 저도 몰래 그 기산점을 늦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잡아 쉰을 넘기면서부터라고 해 두자. 어느 날부터 초저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밤 9시를 전후해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느 날 찾아온 ‘초저녁잠’ 천하에 없는 드라마라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읽고 있더라도 갑자기 엄습해 오는 잠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고꾸라지면 두어 시간을 죽은 듯 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컷 잤다 싶어서 깨어나면 자정 무렵이다. 밤이 길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다가온다. 전전반측, 옛 국어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쯤은 기본이고, 운수 사나우.. 2020. 5. 21.
‘복 지리’? ‘복 맑은탕’! ‘복 지리’가 아니라 ‘복 맑은탕’으로 써야 맞다 나는 일본어와는 인연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배웠다. 한 일 년 남짓 배웠나, 기억나는 건 독일어를 가르치던 키 작은 선생님과 독일어 알파벳 ‘아, 베, 체, 데, 게, 하……’, 그리고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가 고작이다. 그 무렵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독일어나 불어를 가르쳤다. 80년대 초반에 부임한 첫 학교에서도 불어를 채택하고 있었다. 몇 해 후에 학력고사 득점에 유리하다면서 일본어로 바꾸기까지 그 여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친 사람은 임용 동기인 여교사였다. 70년대만 해도 독학으로 하는 일본어 공부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데에 워낙 오불관언이었다. 천성이 게으른데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대한 부.. 2020. 5. 20.
장미보다, 다시 찔레꽃 5월, ‘찔레꽃의 계절’ 해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여기저기 찔레꽃을 찾아 나서곤 해 왔다. 철 되면 피는 꽃이 올해라고 달라질 리 없건마는 4월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나는 고개를 빼고 산기슭이나 골짜기를 살펴보곤 하는 것이다. *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2010/05/28) *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2015/05/16) 그러나 찔레꽃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나 반 박자쯤 늦다. 조금 이르다 싶어 잠깐 짬을 두었다 다시 찾으면 이미 그 하얀 꽃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던 게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바빴나, 그저께 며칠 만에 오른 산어귀에서 만난 찔레꽃은 바야흐로 그 절정의 시기를 막 넘고 있는 참이었다. 지난 9일 치른 대선이 ‘장미 대선’.. 2020. 5. 20.
<한겨레> 지령 1만호…그는 우리의 ‘위로와 자부’였다 1988년 5월 15일 창간 후 32년 만에 1만 호 발행... ‘그래 한겨레’를 기대한다 18일 배달된 는 지령 1만 호였다. 1988년 5월 15일,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모토로 창간된 지 햇수로 32년, 날짜로는 1만1692일 만에 가 1만 호를 독자에게 선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1만 호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현관 앞에 배달된 신문을 집어 드는 순간, 32년 전 창간호를 받던 순간의 기억이 등불처럼 켜졌다. 창간 주주로 참여한 , 지령 1만 호 의 창간은 1970년대 와 의 자유 언론 실천 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은 정권에 굴복한 사주에 의해 기자들의 대량 해고로 치달았고, 축출된 기자들은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자유 언론 운동과 민.. 2020. 5. 19.
나들이 못 권하는 봄, 그래도 ‘황매산 철쭉’ 오랜만에 다시 찾은 5월의 황매산... 하늘과 맞닿을 듯한 진분홍빛 화원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연초에 코로나19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리라고 여긴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쯤이야 어느 날 눈 녹듯 스러질 것이고 잠시 멈칫했던 나의 일상은 곧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3월에 각급 학교 개학이 미루어질 때만 해도 사태가 가라앉으리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러나 5월도 중순이건만,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백일을 넘기면서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마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정된 공간.. 2020. 5. 19.
‘나이 듦’ 받아들이기 ‘나이 듦’이든, ‘노화’든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면서 며칠간 미뤄두었던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건강진단에서 나는 고지혈증 의심 판단을 받았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난달부터 약을 먹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약이 떨어졌고 새로 약을 처방받으러 다시 병원에 들른 것이다. 내가 들른 병원은 가정의학과 의원이다. 젊은 의사가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긋한 자세로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진료해 주어서 우리 가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조금 불안해지는 기분을 간신히 가누고 있었다. 지난번 진료에서 혈압을 재고 의사는 ‘많이 높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해 치른 두 번의 내시경 검사 때 쟀을 때 정상이었다고 대답하면서 무언가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혈압.. 2020. 5. 19.
[2017 텃밭 일기 ①]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텃밭 농사와 농약, 그 ‘윤리적 딜레마’ 지난해 농사는 좀 늦었었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좌충우돌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새 5월이었다. 시기를 놓쳤는데 농사가 되기는 할까, 저어하면서 텃밭에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은 게 5월 하순이었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 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미리 이랑을 지어 검은 비닐로 씌우는 이른바 ‘멀칭’ 과정을 생략하고 시작한 농사에 우리는 잔뜩 게으름을 피웠던 것 같다. 매주 한 번꼴로 밭을 둘러보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밭에 들르는 일이 뜸해졌던 것이다. 9월 중순께 다시 들렀을 때 텃밭은 바랭이와 쇠비름 같은 풀이 우거져 마치 흉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임자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졌어도 우리 .. 2020. 5. 18.
그는 왜 안동시민에게 주먹밥을 나눠줬을까 ‘5·18 기념 안동 주먹밥 나누기’ 행사 준비한 차명숙씨 이 땅의 슬픈 현대사는 ‘오월’을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계절의 여왕’과 ‘메이퀸’ 따위의 달콤한 어휘로 싱그러웠던 오월은 그러나, 1980년 빛고을의 고통스러운 항쟁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유의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과 핏빛으로 거듭 피어났기 때문이다. ‘고정간첩의 사주로 일어난 폭동’에서 ‘사태’를 거쳐 공식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으로 정착했지만, 여전히 빛고을의 오월은 혼란스럽다. 5·18을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사람만큼 그것을 ‘사태’와 ‘폭동’으로 이해하는 이의 숫자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영남 사람들에게 5·18광주민중항쟁은… 스물여덟 돌 5·18을 맞아 5·18 기념재단이 벌인 설문조사 결과, 국민 열 중 하.. 2020.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