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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125

시(詩) 앱 <시요일>, 독자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창비에서 출시한 시 앱 출판사 창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최고의 시 애플리케이션 ’을 내놓았다. 무려 3만3천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시편을 독자들이 친근하게 만나고 손쉽게 누릴 수 있도록 ‘최적화된 애플리케이션 북을 선보이는 것’이란다. 시를 ‘스마트 기기에서 즐기는 감각적 콘텐츠’로 시는 시대상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장르다. 그러나 시대와 매체 환경이 급변하면서 종이책 시집을 찾는 독자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이제 독자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감각적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고 있다.” 창비가 을 내놓은 배경이다. 한편으로 시는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스마트 기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최적화되어 있는 장르이다. 따라서 이러한 매체 환경이 ‘역설적으로 시를 가장 널리 전파해 .. 2022. 4. 13.
그 ‘특별한 형제들’이 건너온 한국 근현대사 [서평] 정종현 지음, ‘특별한 형제들’ 정종현 교수의 은 그가 2019년에 펴냈던 (휴머니스트)을 준비하며 접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극적인 삶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에서 비롯되었다. 제국대학 유학생들에 관한 관심은 식민과 분단, 전쟁과 냉전으로 전개된 20세기 한국의 근현대사를 헤쳐온 인물들로 이어졌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형제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함께 나고 자랐지만, “역사의 갈림길에서 때로는 비슷하게, 때로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형제들의 삶이야말로 한국 근대의 속살을 드러내는 이야기”(출판사 책 소개, 아래 같음)였기 때문이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엇갈린 형제들의 삶 책의 부제는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을 넘나드는 근현대 형제 열전’이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식민과 해방, 전쟁과 분단의.. 2022. 4. 2.
‘PD수첩’에 서린 PD들의 땀과 좌절의 세밀화 [서평] PD수첩 제작진 지음 2008년 이후, 이른바 ‘PD수첩’ 사태로부터 시작된 , 혹은 ‘PD수첩’의 만만찮은 수난사는 MB정부 출범 이후 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이런저런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경험들과 닮아 있다. 닮은꼴 ‘MB 정부’와 ‘MBC’ 아니,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진보 개혁진영의 시각과 권력에 의해 선택된 새 사장을 맞이하는 구성원들의 관점은 대동소이했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 사람들은 대부분 국민의 정부 이래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이루어졌던 민주주의와 인권의 형식과 내용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일관되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비록 보수적인 우파의 집권이긴 하지만 역사와 진보의 추세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2. 3. 20.
새로 만난 시인들 - ③ 신용목 신용목의 ‘갈대 등본’과 ‘소사 가는 길, 잠시’ 새로 만난 시인으로 안현미와 손택수에 관한 글을 썼다. 검색으로 그들의 대표작은 물론이거니와 이런저런 소소한 정보들도 금방 ‘긁어’ 올 수 있으니 인터넷 시대는 참 편리하다. 그들의 시집을 따로 읽지 않고 그들에 대해 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인터넷의 힘이다. 안현미에 이어 쓸 시인으로 나는 손택수, 신용목을 일찌감치 정해 두었다. 안현미와 손택수의 시집 과 와 함께 신용목의 시집 를 받은 것은 지난 2월 25일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까지 나는 그 시집을 열어보지 못했다. 시집이란 게 그렇다. 조바심으로 기다리던 연재소설도 아니니 서둘러 펼 일도 없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잡듯이 읽어 내려갈 일도 없다. 짬 나면 잠깐씩 들여다보고, 마음에 .. 2022. 3. 19.
우리 모두의 ‘한 잎의 여자’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 나는 오규원(1941~2007) 시인을 잘 모른다. 물론 이는 선생의 명성과는 무관하게 내가 ‘무심하고 형편없는 독자’여서이다. 나는 그의 시를 제대로 읽지 않았고 그가 펴낸 시집 나 등 시집을 마치 유행가 제목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얼마간 우리 집 서가에는 민음사에서 펴낸 ‘오늘의 시인 총서’ 시리즈 중의 하나였던 그의 시집 가 내내 꽂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시집을 읽었던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가끔 어디선가에서 우연히 읽은 그의 시 ‘한 잎의 여자’를 떠올리면서 나는 그에게 참 미안했다. 내가 민음사에서 펴낸 를 다시 산 것은 지난해 2월이다. 서지사항을 확인해 보니 이 책의 초판은 1975년에 나와 16쇄까지 발행했고, 내가 .. 2022. 2. 24.
비와 우산, 그리고 시(詩) 세 편 비 오는 날 읽어보는 시 비는, 혹은 비 오는 날의 이미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극단으로 나뉜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모처럼의 외출이나 손꼽아 기다려온 경사를 망치는 불쾌하고 짜증나는 날씨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쓸쓸하면서도 적당히 기분 좋은 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가 맑고 투명한 햇살을 삼켜버리며 일시에 세상을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로 바꾸어 가긴 하지만, 그것이 연출하는 적요(寂寥)와 우울(멜랑콜리melancholy)을 사랑하는 이도 적지 않다. 비는, 또는 비 오는 날은 잊었던 감상(感傷)과 애상(哀傷)의 정서를 환기하며 그를 그리움과 추억, 슬픔의 시간으로 인도해 주기도 한다. 비는 물이다. 이 빗물이 가진 정화(淨化)의 이미지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하강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증.. 2022. 1. 31.
새로 만난 시인들 - ② 손택수 의 시인 손택수 ‘택수’라는 이름은 내게 묘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중학교 때에 나와 한 반이었던 아이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성은 잊어버렸고 특별히 친하지도 않았다. 선량한 친구였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그런데도 ‘택수’라는 이름은 나를 그 시절의 교실로 데려간다. 탁구 선수 김택수가 그랬고, 손택수도 그렇다. 손택수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잠깐 그 친구의 성씨가 무엇이었던가를 헤아려 보았다. 그러나 ㅇ씨 성을 가진 보수 정치인은 아니다. 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궤변을 늘어놓는 그 퇴물 정치인에게서 욕지기를 느꼈을 뿐이다. 손택수 시인은 처음 만난 건 시 ‘살가죽 구두’를 통해서다. 그 시는 문태준이 엮은 에 실려 있었다 ( 2권에는 그의 시 ‘방심’이 실렸다). 내겐 기.. 2022. 1. 30.
새로 만난 시인들 - ① 안현미 안현미, 무슨 바람이 불었나. 문태준이 엮은 시집을 읽다가 엮여서(?) 한꺼번에 다섯 권의 시집을 샀다. 기형도와 백무산의 오래된 시집, 허수경과 문정희의 시집, 그리고 2권부터 샀던 의 1권이 그것이다. 과 조선조 후기의 문인 김려의 산문집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까지 보태면 모두 8권이다. 마음이 그득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도 어쩌지 못한다. 지난번에 산 책도 이리저리 찔끔대고 있을 뿐, 제대로 읽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화장실 수납대에 두어 권씩 올려두고 간간이 읽다가 말다가 하다 보니 조촐한 감동은커녕 책을 펼칠 때마다 앞부분을 뒤적거려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거기 푹 빠지지는 못했지만, 여러 시인의 대표작을 한 편씩 여러 번 되풀이해 읽으면서 그 뜻을 새록새록 새기는 기쁨은 유별.. 2022. 1. 28.
‘진보의 희망’으로 살아온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서평] 임헌영 선생의 대화록 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직을 18년째 맡아 온 원로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후배 비평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와의 대화록 을 펴냈다. ‘대화록’의 형식을 빌었지만, 732쪽의 양장본에 묵직이 담긴 것은 임헌영의 성장사와 실천적 삶이니, 이 책은 “‘자연인 임헌영’의 생애를 충실하게 관통하는 자전적 기록”(유성호)이라 해도 무방하다. 대화록의 형식을 빌린 자전적 기록 명색이 문학도였지만, 비평 쪽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는 그간 그의 이름을 문예비평이 아니라, 1970년대 민주화운동 저항사에서 간간이 발견하는 데 그쳤다. 그는 1966년 으로 등단하여 1974년 유신체제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 사건으로 투옥됐고, 월간 와 등 잡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하다가 1979년부터.. 2021. 12. 29.
문학 교사가 만난 작가 현진건 한국 사실주의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대구 출신 소설가 현진건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의 소설을 처음 만난 게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중학교로 진학한 1960년대의 마지막 해다. 그때 나는 전기 입시에 실패하고 후기인 대명동 ‘야시골’의 산등성이에 있는 공립 중학교에 들어갔다. 하교할 때마다 들르던 도서실에서 닥치는 대로 읽어댄 한국단편문학전집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중1, 교과서에서 만난 현진건 당시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한국문학의 흐름」이라는 단원을 통하여 우리는 시인 작가들의 아호와 이름을 섭렵했는데, 현진건은 그 목록의 앞부분에, 꽤 길게 소개된 작가였다. 소개된 작품은 「빈처(貧妻)」와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이었는데 정작 .. 2021. 12. 23.
그들에게 ‘유배’는 ‘자유’와 같은 말이다 [서평] 이주빈의 ‘구럼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 앞 바닷가에 펼쳐져 있는 너럭바위의 이름이다. 이 바위는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것이지만, 화산섬 제주도의 여느 바위들과는 달리 평평한 몸을 무려 1.2km에 걸쳐 누이고 있는데 그 너비도 무려 150m에 이른다. 나이로 치면 5만 살에서 18만 살에 이르는 이 바위는 화산섬 제주도 역사의 일부이면서 그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구럼비는 거기 고단한 몸을 부리려는 사람들의 휴식처였고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구럼비 주변에 해군과 시행업체인 삼성이 높이 3m의 철제 펜스를 친 것은 지난 9월 3일이다. 바위 위에다 시멘트를 부어 ‘민·군 복합관광미항’을 짓기 위해서다. ‘복합관광’ .. 2021. 11. 1.
독립군 토벌부대 출신 군인은 어떻게 창군 주역이 됐나 [서평] 김효순 지음 1930년대 일제가 편제·운영한 ‘친일 토벌부대’ ‘간도특설대’가 간간이 소환되는 것은 이 부대 출신 인사의 친일 전력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때다. 2020년에는 현충원 안장과 관련해 백선엽 전 대장의 간도특설대 이력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 백선엽과 필리프 페탱, ‘구국’과 ‘반역’ 사이). 간도특설대 출신의 한국인 장교들은 일제가 세운 괴뢰 국가 만주국의 군관학교를 나와 만주군 장교로 일제가 요구하는 항일, 항 만주국 세력에 대한 이른바 ‘토벌’을 수행했다. 이들의 주 타격 대상은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마땅히 반민족적인 부역 행위자로 단죄돼야 하지만, 이들은 해방 후 귀국, 국군으로 변신해 군 간부가 돼 안락한 삶을 살았다. 독립운동.. 2021.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