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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125

600일·3만km를 달린 ‘자전거 여행’의 기록, 4권으로 묶여 나오다 [서평] 장호준 지음, ‘라오스·네팔·타이 편’ 외 2권 자전거 세계 여행, 전 4권으로 완간 장호준이 마침내 자신의 세계 일주 자전거 여행기를 4권의 책으로 마무리했다. 지난해 12월 첫 여정을 기록한 ‘중국 편’에 이어 올 9월에 ‘라오스·네팔·타이 편’, ‘튀르키예·유럽 편’, 그리고 ‘아프리카 편’을 펴낸 것이다. [관련 글 : 63세 라이더, ‘자전거 세계여행’의 서막을 열다] 2015년 4월에 배편으로 톈진(天津)을 향해 떠났던 장호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 편으로 서울로 돌아온 것은 2016년 11월이었다. 그가 길 위에 있었던 시간은 600일, 그가 밟은 길은 3만km에 이르렀다. 그 길 위에서 그가 묵을 때마다 노트북을 켜고 기록한 일정과 견문, 소회가 4권의 책으로 묶.. 2023. 11. 8.
[오늘] 대하소설 <토지> 25년 만에 완간(1969~1994)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0월 8일, 작가 박경리 대하소설 완간 1994년 10월 8일, 작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대하소설 가 25년 만에 완간(完刊)되면서 근현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장대한 삶의 파노라마를 다룬 이 위대한 작품의 여정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1969년 1부를 쓰기 시작했을 때 마흔두 살이었던 작가가 예순일곱의 노년에 이른 이 25년은 한편으로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파노라마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25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소요되었다거나 원고지 3만 장을 훨씬 넘는 대작이라는 등 수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가가 긴 세월 동안 수만 장의 원고지에 담아낸 것은 각고의 노력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의 원형으로서 토지를 중심으로 교직(交織)한 위대한 서사였기 때문.. 2023. 10. 8.
고 정영상 시인의 문학전집 <감꽃과 주현이> 출간 추모 정영상 30주기-정영상 문학전집 를 받고 6월인지 7월인지, 상주의 선배 조 선생이 정영상의 시와 산문을 묶은 책을 보내주었다. 추모 정영상 30주기 정영상 문학전집 이다. 시인의 고교 후배인 이대환 소설가가 엮은, 508쪽의 두툼한 장정판이다. 지난 4월 15일, 그의 모교인 공주대학교 교정에서 베풀어진 30주기 추모식에서 전집을 펴낸다고 하더니 그새 책이 나왔나 보았다. [관련 글 : ‘그’가 가고 30년, ‘그’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책을 받아, 나는 그걸 책상 옆 프린터 위에다 얹어두고 볼 때마다 글쎄, 책 출간 소식이라도 한 자 끄적여야지, 하고 생각만 하면서 두어 달을 보냈다. 그가 낸 시집과 산문집은 모두 내 서가에 있으니, 굳이 따로 읽을 일도 없을 듯해서였다. 대학에서 만나.. 2023. 9. 5.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세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엘(L)’ 자 - 사랑, 자유, 노동 영화 (1992)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엘(L)’ 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각각 ’사랑(Love), ‘자유(Liberty)’, ‘노동(Labor)’이다. 앞의 ‘사랑’과 ‘자유’가 마음의 영역과 가깝다면 ‘노동’은 몸과 이웃한 영역이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형식의 활동이다. 노동을 ‘정신’과 ‘육체’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건 일종의 관행처럼 보인다. 몸의 근력을 소비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게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구분에 익숙하다. 노동은 눈에 보이는 상품 생산을 위한 활동일 뿐이라는 생각을 잘 넘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이라고 하면 내겐 전.. 2023. 5. 2.
시인은 생각의 길마저 끊어진 그 ‘높고 푸른 거기’ 가고 싶다 김지섭 시집 『어디 어찌 그것뿐이랴』 김창환 선생 10주기 추모식에서 김지섭 선생을 뵈었다. 2019년 5월, 내 출판 기념회에 와 주셔서 뵙고 어언 4년 만이다. 선생님은 김창환 선생보다 2년 위시니 우리 나이로 일흔일곱, 내게 9살 연상이시다. 언제나처럼 차분해 뵈는 모습이었으나, 여든에 가까이 이른 세월의 자취는 지우기 어려운 듯했다. 경황 중에 하직 인사도 못 드리고 돌아왔는데, 그날 밤 지난해 낸 시집을 보내주겠다면서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에 우편으로 시집이 왔다. 그러나 시집을 받아놓고도 며칠 동안이나 책을 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시를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다. ‘시 읽기’의 어려움, 혹은 그 준비 대체로 문학도들은 시를 끄적이면서 문학에 입문하는 듯하지만, .. 2023. 3. 17.
63세 라이더, ‘자전거 세계여행’의 서막을 열다 [서평] 장호준의 자전거 여행 기록 세 살 터울의 내 친형이 세계를 일주하겠다며 한국은 떠난 것은 2015년 4월이었다. 세계 일주라면 비행기나 열차를 이용하는 여행을 상상하겠지만, 그가 선택한 이동 수단은 자전거였다. 순전히 두 다리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건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이라도 마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2015년 4월, 60대 라이더 600일의 자전거 여행을 떠나다 물론, 그게 전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사실상 나는 그걸 응원해야 하는지, 말려야 하는지조차 헛갈렸다. 어쨌든 그해 4월 그를 보내고 나는 블로그에 그의 출발을 알리는 글을 썼다. 그는 만만찮은 준비 끝에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톈진(天津)으로 떠났었다. [관련 글 : 63세 라이더, .. 2023. 1. 3.
창비의 ‘독점구조’와 김사인의 ‘만해문학상 사절’ 출판계의 메이저 창비의 ‘독점구조’, 김사인의 ‘만해문학상 사절’ 굳이 밝히지 않아도 아실 일이다. 나는 30여 년쯤 중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빼면 오늘의 한국문학이나 문단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무명의 독자다. 20대의 한때 문학청년이었다는 것도 따로 내세울 게 없는 게 그 무렵의 젊은이 중에 문청(文靑: 문학청년)이 좀 많았는가 말이다. 가물에 콩 나듯 연간 두어 차례 시집을 사는 게 고작이고 소설 쪽은 그보다 훨씬 성글게 만나는 형편이니 ‘독자’라도 그리 성실한 축에는 끼지 못한다. 그러나 한때 문청으로 그쪽 판을 기웃거려 본 전력에 기대어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우리 문단에 대해서 알 만큼 안다고 믿는 구석도 있다. 독자들의 ‘상식’과 ‘믿는 구석’ 이 ‘구석’이 책.. 2022. 9. 3.
21년차 검사의 ‘부적격 F 평가’를 각오하고 쓰는 대국민 고발장 [서평] 임은정 지음,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검사 임은정의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2012년 윤길중 재심 사건에서 관례인 ‘백지 구형’ 대신 법정의 공판 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무죄 구형’을 했다는 짤막한 일간지 기사에서였다.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는데, 정작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등허리가 서늘해졌었다. 무죄 구형으로 중징계 받은 그 검사의 10년 그가 그 일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것은 2013년 2월이다. 그쯤에서 끝났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더는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무죄 구형 뒤에 용감하게 ‘징계 청원’이라는 글을 검사 게시판에 올렸고, 5년간의 징계 취소소송을 벌여 2017년 10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2022. 8. 18.
안상학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새 시집 안동의 안상학 시인이 시집을 새로 냈다. 2008년에 낸 이후 6년 만이다. 나는 그 소식을 기사를 통해서 알았다. 며칠 후에 시인의 동무인 안동의 후배로부터 주소를 보내달라는 전갈을 받고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그러잖아도 기사를 읽었어. 경상북도엔 안상학밖에 없네!” 우리 고장에서 시집을 내는 이가 어찌 안상학 시인밖에 없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이 시대 지상의 가치로 추앙받는 돈과 무관하게 힘들여 시를 쓰고 이 한여름에 시집을 펴내는 여느 시인을 죄다 알지 못하니 역시 그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안상학, 다섯 번째 시집 출간 여섯 해 전 을 냈을 때 나는 이 지면에다 그의 시집에 대해 이런저런 성근 감상을 주절댔다.[관련 글 :‘밥 못 먹여 주는’ 시와 함께 살아온 시인의 20년 세월] .. 2022. 7. 27.
‘제국대학의 조센징’, 그 엇갈린 엘리트의 초상 [서평]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 2019) 지금은 이른바 ‘스카이(SKY)’로 뭉뚱그려지는 고려대나 연세대는 일제 강점기 땐 대학이 아닌 전문학교였다. 강제 병합 초기에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고등교육처럼 문명화된 지식인 양성 교육을 시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식민지 운영에 필요한 정도의 인력 양성을 위해 초중등교육과 실업교육의 보급에 주력했다. 이에 식민지 청년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들 가운데에는 이른바 ‘제국대학’에서 공부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국대학은 1886년 도쿄제국대학을 위시하여 일제가 설립한 7곳의 관립 종합대학으로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기관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도 각각 경성제국대학(1924)과 대북제국대학(1928)을 세웠다. 제국대학 유학생들의 집.. 2022. 6. 28.
알라딘의 인터넷 ‘서재’ 이야기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내 ‘서재’ 먼지의 방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드나든 지 10년이 넘었다. 맨 처음 거래한 온라인 서점은 ‘북스 포 유’였는데, 얼마 후에 이 가게는 알라딘과 통합되었으니, 따로 다른 가게에는 곁눈을 주지 않은 셈이다. 책을 사러 책방에 들렀다가 원하는 걸 찾지 못하고 돌아서거나 주문하고 한 번 더 들러야 하는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 온라인 서점은 매우 ‘생광스러운’(부모님 세대들이 즐겨 썼던 말인데, 정작 우리에게는 낯설다. ‘生光’이라는 한자어에 접미사를 붙여서 만든 형용사인데, ‘빛이 남’, ‘자랑스러워 낯이 남’의 뜻이다. 그들 세대의 언어가 가진 풍부한 정서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어휘여서 나는 이 말을 즐겨 쓴다)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읽기를 왕성히 하던 때에는 매.. 2022. 5. 16.
고은 시 ‘화살’을 읽으며 고은의 시 ‘화살’, 혹은 비장한 투쟁의 결의 교과서에 실린 고은 시인의 ‘눈길’을 가르치면서 18종의 문학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를 훑는다. ‘머슴 대길이’와 ‘문의 마을에 가서’와 함께 시 ‘화살’도 교과서에 실렸다. 문학 교과서에 ‘타는 목마름으로’와 ‘노동의 새벽’이 실리는 것도 민주주의의 진전일 터이다. 건성으로 첫 연을 눈으로 읽다가 그 끝부분에서 뭔가 가시처럼 걸리는 걸 느낀다.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캄캄한 대낮’으로 표상되는 폭압의 현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애매한 70년대를 생각한다. 그리고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서 싸웠던 일군의 시인 작가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자신의 싸움이 자기 이해가 아니라 나라와 겨레의 삶과 정의를 위해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무한 .. 2022. 4. 27.